새로운 국정 우선순위 세워야 - 사공일
	2003-11-03
새로운 국정 우선순위 세워야 60년대 수출·80년대 경제 안정 … '기업 친화적 여건' 조성 시급 한국에서 기업하기 힘들어 중국으로 떠난다는 외국 기업들의 불평을 듣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위해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대통령이 언급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하루속히 올바른 국정운영의 우선 순위가 세워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오늘날 우리는 탈냉전과 정보통신 혁명,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 등으로 온 세계가 조그마한 마을처럼 되는 소위 ‘세계화’ 추세가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일자리’를 제공할 국내외 기업들이 ‘기업 친화(親和)적 여건’을 찾아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새로운 여건 속에 살고 있다. 과연 이러한 국제 여건 속에서 우리의 국정 우선순위는 어디에 모아져야 하겠는가. 한마디로 기업 친화적 여건 조성에 모아져야 할 것이다. 국정운영의 궁극적인 목표가 우리 국민 모두의 복지향상에 있다면, 우선 일할 능력이 있고, 일할 의사가 있는 국민 모두가 생산적인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실제 오늘날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있는 중국 등 많은 나라들은 바로 기업하기 좋은 여건 만드는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나라들임을 주시해야 한다. 단지 기업 친화적 여건 조성과 관련하여 한 번 더 강조되어야 할 것은 사회간접자본 시설의 확충 등 하드웨어 측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측면의 여건 조성의 중요성이다. 물론 정치를 안정시키고, 북핵 문제 등 소위 지정학적 위험 요소를 줄이는 일들은 중요하다. 이와 함께 법치(法治)가 이룩되고 국제수준에 맞는 모든 법과 제도가 투명하게 집행·운영됨으로써 모든 거래 비용을 줄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조세구조와 각종 세율도 국제 수준에 맞게 조정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의 건전화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최근 들어 계속 줄어들고 있는 외국인 직접투자의 가장 큰 요인으로 비협조적인 노사관계와 노동시장 경직성이 지적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국정운영 우선순위와 관련하여 과거를 한번 돌이켜보자. 1960년대 초 정부는 “잘살아 보자”는 구호와 함께 절대 빈곤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하기 위한 ‘수출입국’에 국정의 우선 순위를 두고 총 매진했다. 이러한 국정운영은 GATT(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 체제하에서 신장된 자유무역 분위기와 일방적으로 개방된 미국의 방대한 시장 등 당시의 국제여건을 백분 활용할 수 있어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수출입국을 위한 정부 주도의 경제운영은 시장기능의 왜곡과 만성적 인플레 등 많은 구조적 문제를 잉태한 것도 사실이었다. 따라서 1970년대 말부터 안정성장 기반 확립을 위한 민간주도의 경제운영과 물가안정을 통한 경제 안정화에 국정의 우선 순위가 놓여야 한다는 논의가 정부 안팎에서 이루어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맞은 정치 여건의 큰 변화와 심한 경기후퇴와 함께 새로운 국정 목표를 경제 안정화에 두게 되었고, 그 결과 개발연대 이후 처음으로 물가안정 기반이 이룩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미진했던 민간주도의 경제운영 기틀 마련과 세계화 시대를 대비한 국정운영의 올바른 전환을 이룩하지 못한 결과, 급기야 우리는 환란(換亂)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것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세계화 시대의 이점을 백분 활용할 수 있도록 국내외 기업 모두에 기업하기 좋은 여건을 조성하는 데 국정의 우선 순위가 모아져야 한다. 그 우선 순위가 바로 서고 국가의 최고 리더십을 포함하는 국정운영의 핵심인 공직자들이 이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일할 때, 민간 부문의 에너지가 그리로 집중될 수 있다. 그리고 현 정부가 내걸고 있는 ‘동북아 경제 중심’과 ‘소득 2만불 시대’ 목표도 이러한 국정 우선 순위 하에서만 달성 가능할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3. 11. 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