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을 위한 파병이 되려면 - 박효종
2003-10-21
국익을 위한 파병이 되려면 이라크 파병문제가 '재신임 정국'의 돌출로 말미암아 표류하다가 드디어 파병 쪽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정부로서는 국회와 국민을 설득할 일만 남은 것이다 . 그 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파병문제와 관련해 열띤 논란이 전개되어 왔는데 논 란의 와중에서 한ㆍ미 동맹의 의미가 제대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맹이란 양국간의 이익을 위해 행동을 같이하겠다는 굳은 약속이다. 굳은 약 속이기 때문에 동양에서는 같이 피를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히 그런 약속 을 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에 국가가 취할 행동의 자유는 다르다. 흔히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볼 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일찍이 로마인들은 주변 부족들과 로마동맹을 맺어 충실히 지켰는데 알프스를 넘어온 천하무적 한니발의 카르타고인들을 물리친 것도 바로 로마동맹의 건재 함 때문이며, 그 결과 세계적 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약속을 하고 서도 그런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인가 여부를 항상 '제로베이스'에서 고민해야 한다면 약속을 했다는 의미는 찾아볼 수 없다. 미국과의 동맹 관계는 우리의 안보와 경제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6ㆍ25의 폐허 속에서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부흥하는 데 미국과의 동맹을 빼놓고서는 말 할 수 없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국가간의 대등한 관계가 아 니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상당하다.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도 미국의 독주에 불만을 토로하는 프랑스나 독일의 행태에 솔깃해 하는 분위기도 같은 맥락이다 . 물론 반미감정을 포함한 이 모든 현상은 한국이 자신의 정체성과 목소리를 주 장할 정도로 국력이 성장했다는 방증일 수 있다. 하지만 '자율적인 주권국가'만이 한국의 모든 것은 아니다. 미국과의 동맹 관 계는 단순히 과거의 일만이 아니라 현재의 일이며, 또 미래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변이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요 강대국으로 둘러싸인 한국이 스위 스처럼 고고하게 살 수 있겠는가. 오늘날의 스위스가 '강한 소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조상들이 많은 피 와 땀을 흘렸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스위스는 척박한 땅이었고 주민들은 항상 절대적 빈곤에 허덕였다. 그렇기에 유럽에서 용병을 보내기로 가장 유명했던(? ) 나라가 바로 스위스다. 용병으로 다른 나라에 가 싸워주면서 돈을 벌어 처자 를 먹여 살렸던 것이다. 오늘날 로마 교황청에서 멋진 제복을 입고 근무하고 있는 교황의 근위병들이 스위스인인 것도 모두 이와 같은 슬픈 역사의 유산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수렁에 빠져 있다. 애초부터 ' 잘못된 전쟁'이었다는 비난, 또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전쟁 후의 치안 상황에서 더 많은 희생자를 내는 역설적 상황 등 내우외환의 형국이다. 그런 어려운 상 황이야말로 우리에게 파병을 요청한 절실한 이유다. 그것도 동맹의 이름으로 말이다. 한편 파병은 우리의 성장한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적 위상을 내외에 과시할 기 회가 될 수 있다. 파병을 계기로 이라크의 전후 안정과 복구에 동참할 때 한국 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질 것은 자명하다. 현재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를 지향하며 대외적인 위상 제고에 안간 힘을 쏟고 있다. 파병을 그런 의미에서 국가 비전과 부합한다고 말할 수 없겠 는가. 파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평화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국제적 명분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고 이라크전 이후 전개될 중동의 지정학적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중동지역에서 석유 의 대부분을 공급받고 있는 것이 우리 실정이 아닌가. 파병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부담은 분명 작은 것이 아니다. 치안부대라지만 우 리 군인들은 '땀'뿐만 아니라 '피'도 흘릴 수 있다. 또 희생자가 발생했을 때 "내 아들 살려내라"는 절규가 터져나올 수 있다. 이런 상황을 예견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미사여구로 얼버무리려 할 것이 아니라 실상을 밝히면서 솔직하게 국민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또 '인도적 목적'을 위한 파병일 뿐 '이라크인과의 전투'를 위한 파병이 아님 을 아랍권을 비롯한 내외에 말과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파병을 결정한 이상 이런 후속 조치들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를 기 대한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매일경제 2003. 10. 21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