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선언은 연방제통일의 합의로 해석될 수 없다. - 신일철
	2002-05-24
6.15선언은 연방제통일의 합의로 해석될 수 없다. - 연합제와 연방제에는 공통성이 없다. - [ 목 차 ] 1. "연방제통일"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사이비" 언명이다. 2. 북한 연방제의 '민족'은 '두 개의 민족' 테제 위에 있다. 3. 연방제 통일안은 6.15 공동선언의 성격 규정에서 독해되어야 한다. 4. 연방제 통일안보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재확인이 시급하다. 5. 남북한 간의 상호존재 시인에서 재출발해야 한다. 6. 북한 개혁개방 유도의 한계 7. 대한민국 정통성의 초석 위에 대북정책이 다시 서야 한다. 1. "연방제통일"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사이비" 언명이다. 남북한 정치통합의 큰 문맥에서 6.15선언의 제2항 "연합제"·"연방제"의 통일논의는 남북한의 두안이 모두 애매모호하고 그 기본개념이 다의적(多義的)이어서 남북한의 두가지안에 공통성이 있다는 단정부터가 듣기에 좋은 정치적 언설이지만 수긍하기는 힘들다. 우선 7.4공동성명이 그 성명의 재해석을 위한 남북한간의 후속회담으로 뒷받침되지 않은 것과 같이, 6.15선언문의 어귀해석이나 그 기본정신에 대해서도 남북한간의 후속합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민족끼리"의 통일선언이라고 하고 한국측은 6.15선언후의 통일과열의 혼란에 접하여 6.15선언은 20∼30년후의 통일에 이르는 과정의 "평화공존" 선언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주된 해석이 되었다. 6.15평양회담 직후 3주만에 7월 10일 김대통령은 당장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20∼30년후에나 통일이 대망된다고 해서 성급한 통일과열을 경계했다. "지금 경제적 능력이 없고 국민감정이 받아드릴 수 없어 남북의 통일은 바랄 수 없는만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해 가면서 20∼30년이 지나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면 통일이 온다." 이 김대통령의 언명이 6.15선언에 대한 간단명료한 정답의 해석이다. 우선 남북한 정치통합은 20∼30년뒤에 자생적 질서로서 "통일이 온다"는 김대통령의 표현에는 지난 6월의 평양회담에서 받은 절실한 실감에 기초해 있는 가장 잘 집약된 "6.15선언"에 대한 평화공존 지향의 선언적 석경을 잘 천명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의 회견에서 "완전한 통일까지는 20∼30년이 걸릴 것이고, 통일의 시기보다는 전쟁위험 제거와 평화공존 등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20∼30년이 지나"의 시기에는 먼저 북한이 중국, 베트남식 개혁개방형을 단행하여 우리 한국이 그런 북한의 "연착륙"과 자력갱생을 돕자는 것이다. 따라서 "법적으로"(de jure)의 연방제통일국가 건설의 협상이 아니라 다만 "사실적인"(de facto)인 "통일적 상황"의 조성에 힘쓰는 것이 우리 한국측의 6.15선언 정신에 대한 권위있는 해석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남북간에 우편교환·고향찾기·기차여행 등의 길이 트이는 것이 바로 "통일적 상황"이다. 그런데 6.15선언의 제2항 통일지향적 "선언"적 언설에서 남한의 "연합제"는 "국가"가 삭제되었으나 역시 "국가연합"(confederation)의 "남북연합"이고 북한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역시 1980년대 이후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 테제의 "1국가형" 연방제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남북한의 두 안이 과연 공통성이 있느냐이다. 있다면 그것은 개와 고양이가 공통점이 있다는 것과 같이(애완동물이므로) 동상이몽의 양의적(兩儀的)인 "사이비언명"일 뿐이다. 손쉽게 예를 든다면 북한의 연방제는 구소련방의 레닌주의적 "공화국연방"(federation of republics)을 모델로 하고 있다. 1991년 소련방이 해체된 후 그 구소련판도에는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이 나타났다. 우리는 구소련방과 12개 독립국가들의 공동체인 CIS가 양자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감히 말하지 않는다. 이런 비교에서 본다면 남한의 "남북연합"은 "두개의 독립된 주권국가"의 존재를 대전제로 했고 북한의 연방방안은 "하나의 연방국가"만이 국제법인 국가이고 두 개의 자치정부는 독립국가도 아니고 국제법적인 온전한 국가가 아니다. 따라서 남한의 남북연합과 북한의 연방제의 양안은 공통점이 그 근본에서는 없다는 것이 보다 타당성있는 해석이 된다. 가령 한국은 "연합제"를 북한의 고려연방제안과 공통성이 있도록 재규정하여 북한편향적인 해석을 시도한다면 두 개의 안에 공통점이 있다고 강변함으로써 중대한 범주오류를 범하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는 6.15선언의 제2항의 한국측 안에서 "국가"가 삭제되어 "독립국가연합"적인 해석의 길이 희미하게 한 것은 주의력 부족의 산물일 것이다. 한국안은 어디까지 두 개의 독립된 주권국가의 존재시인에 기초하여 국가연합의 평화공존형이 그 기본이라는 원칙에서 일탈해서는 안된다. 북한의 정치적 언어는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이어서 밖으로 내세운 외양과 숨겨진 내심의 2원적 구조를 가지고 능난하게 구사하고 있어 그 독해에서 항상 난감함을 느끼게 한다. 6.15선언에서 내비친 북한의 "낮은 단계 연방제"에 가장 가까운 안이 1991년 김일성 신년사에 나와있다. 이 "고려민주연방공화국"안의 연방제 제안은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의 도식으로 되어있다. 이와 반면에 한국의 "민족공동체"안에서는 "2체제 2국가"이다. 따라서 1국가냐 2국가냐의 차이는 우리 한국에게는 대한민국의 국호, 국가, 애국가 뿐만 아니라 우리의 헌정질서면에서 국제법적인 주권국가의 견지냐 아니면 "하나의 연방국가"밑의 자치정부가 되느냐의 체제의 정통성에 깊이 관련되어 두안간의 공통성을 인정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하나의 연방국가"가 연공연북(聯共聯北) 통일의 북한주도적이 되는 것을 우리 한국이 용납할 수 없고 그 반대로 남한주도의 대북 "흡수통일"형도 북한이 용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남북한의 두 체제의 50여년간의 역사와 단절되어 버린 허공에 연방제통일을 그리는 그림은 대단히 환상적 유토피아로서 오히려 그런 시도는 또다시 군사적 내전의 위험성을 유발할 수도 있다. 1991년의 김일성의 신년사는 밖으로 "1민족, 1국가"를 내세운 통일안이 "고려민주연방국가"안인 듯 보이지만 오히려 "2제도 2정부"에 역점을 둔 "제도통일 반대"가 그 내심의 초점이다. 이 신년사에서 김일성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구에게 먹히지 않는 원칙"을 내건 제도통일의 반대에 중점을 두었다. 이 91년 신년사의 독해에서는 역지사지(易之思之)의 관점전환으로 북한이 처했던 암담하고 긴박한 위기의식에서 구사회주의권 붕괴와 특히 독일의 "흡수통일"에 직면해 수세에 몰린 방어책으로 주로 북한체제연명의 고수에서 나온 제안으로, 그 문맥상 수세의 연설로 독해해야 할 것이다. 90년의 이와 같이 진퇴유곡의 궁지에 몰린 상황 속에서 북한체제의 보장에만 전념하지 않을 수 없었던 1991년의 위기감에서 남북기본합의서의 "평화공존적 협약"이 이루워질 수 있었다. 그런데 "고난의 강행군"을 거친 2000년의 김정일 시대에 와서는 그 수세의 판도를 공세로 전환시키는 그의 권모술수적인 책략이 나타나 기왕의 "제도통일반대"의 통일안을 "1국가"의 "연공연북"적 통일전선전술의 명분론적 통일공세형으로 전환시킨 것이 6.15선언의 제2항이다. 고려연방제는 "1민족, 1국가"의 통일원칙과 "두개의 제도, 두 개의 정부"를 내세운 제도통일반대의 2원적 구조로 되었다. 1991년의 김일성 신년사의 통일안은 뒷부분의 제도통일 반대론에 중점을 두었고 그로부터 10년후 김정일은 그 고려연방제의 앞부분의 명분론적 통일론을 내놓아 6.15선언은 북한측이 제도통일 반대론을 뒤로 숨긴 통일론이 되었다. 그러나 김정일 총비서의 대남정책의 근저에는 북한체제 고수의 "제도통일 반대"의 기본입장이 그대로 음성적으로 존속되어 있는 표리부동한 양면전술의 구사로 나타났을 따름이다. 6.15선언후 남북한간의 관계전개에서 북한측은 자기체제의 고수의 기본인 개인숭배 수령론, "선군" 군사독재의 "총대철학"의 통치교조에서는 의미있는 변화가 없고 특히 남북한간의 가장 초보적인 우편교환의 제한적 시행도 자기체제동요를 겁내는 공포증으로 거부하고 있다. 남북간에 편지왕래도 겁내는 북한측과 "연방제통일"의 정치통합을 협상할 수 있다고 꿈꾼다면 이는 진보주의 정서에서 왕왕 생기는 백일몽의 "사이비문제"일 뿐이다. 북한지도부는 6.15선언의 정신을 그때 그때에 자기중심의 당파성으로 해석해서 북한과의 문서상의 합의마저도 얼마든지 뒤집는다. 지난 11월 9일 금강산개최로 양보한 제6차 남북한 장관급회담에서 북한 김령성대표는 그의 기조발언에서 남측이 최근 밖에 나가 그 누구를 개혁개방에로 유도하도록 도와달라고 '청탁놀음'을 벌렸으며 "이것은 상대방의 제도를 인정하고 두 제도의 공존에 기초한 통일로 지향해나갈데 대한 공동선언을 완전히 무시하고 우리의 존엄을 해치고 체제를 건드리는 용납못할 엄중한 도전이다."라고 무례한 거부감을 표명했다. 이 발언에서 개혁개방의 두터운 외투를 벗게한다는 햇볕 레토릭의 가정이 그 정책 상대방인 북한측의 반발에 부딪쳐 궁지에 몰렸다는 느낌이 든다. 올해초 북한 지도부가 "신사고"를 가지게 되어 "상하이쇼크" 이후 "제2의 중국"으로 개혁개방한다는 한국의 일부 햇볕정책론자들의 해설이 얼마나 북한의 실정을 직시하지 못하고 넘겨짚은 희망적 관찰의 허위의식에선 북한관이였는가를 여실히 드러나게 되었다. [본문전체 내용보기]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북한 정치의 시네마폴리티카' 中에서(출판사:이지북) '북한 정치의 시네마폴리티카' (저자:신일철, 출판사:이지북) 서평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