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의 4대 연금이 2020년이면 고갈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 지금 열심히 일하여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40대가 퇴직할 나이가 될 때이니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를 보면 노령화 사회가 되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방되던 해의 한국인 남자의 평균 수명이 40세였다. 그때 대부분의 직장에서 55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사기업이 별로 없고 공무원과 교직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시절에 이들의 퇴직 연령은 평균수명보다 높았다. 그래서 일생을 걸고 그 직종과 계약한 것이다.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연령의 시대는 가고 없다. 이제는 일생에 몇 가지 직종에 종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되려면 직장의 유연화와 노동의 유연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미래로 진입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회로 진입하던 연금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사회든지, 그것이 고대국가든 현대국가든, 서양사회든 동양사회든, 인구는 3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일할 능력이 없는 노년층, 한창 일하는 장년층, 일하는 기술을 배우는 유년층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중간층인 장년층이 양측을 먹여 살린다. 다시 말하면 1세대가 일해서 3세대가 모두 먹고사는 법칙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름하여 3분의 1의 법칙이다. 곤충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미의 경우에도 이 법칙은 적용된다고 한다. 일개미가 모든 개미 식구를 먹여 살리는데 그 수효가 3분의 1이라고 한다. 만일 일개미의 인구를 반으로 줄이면 병정개미가 일개미가 되어 3분의 1을 회복한다고 한다.
이 3분의 1의 법칙을 무시한 연금의 설계가 이렇게 만들었다. 더욱이 노년의 자연인구가 늘어난 점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연령을 기준으로 직장에서 쫓아낸 인구를 포함하면 3분의 1의 법칙이 깨지는 것이 가속되어 왔다. 연금 수령의 연령이 60세인데 50대 초반에 일할 자리가 없어지니 이들을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상당히 오래 동안 가족이란 공동체가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젊은 세대는 일하여 노인을 봉양하고 자식을 기른다.
자신이 늙어지면 자신의 자식이 똑같은 방법으로 가족의 삶을 책임져 이어간다. 옛날에는 저축이라고 해봐야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금융이다. 젊어서 일하여 만든 소득 가운데 일부는 소비하고 나머지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저축한다. 저축 수단 가운데 돈의 형태야말로 으뜸이다. 돈은 사실 저축 수단으로 보기에는 흠이 많다. 대표적인 흠이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대비한 저축수단의 돈을 으뜸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불가사의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지폐도 없고, 다른 금융수단도 없고, 오직 자식에게만 의존하던 시절, 저축도 없고 자식도 없던 어느 노인이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여 젊은이를 설득하였다. 이 종이를 줄 테이니 나와 먹을 것을 교환하자고. 젊은이가 생각해 보니 그 종이조각을 받고 먹을 것을 교환한 후에 그 노인이 세상을 뜨면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노인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나처럼 늙어지면 물론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지금 내가 자네를 설득하는 것처럼 자네도 새로운 젊은이를 설득하여 자네에게 필요한 식량을 교환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여 그 종이조각은 세대에서 세대로 넘겨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만일 우리의 주인공인 노인이 그 종이조각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그는 즉시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후 자식이 없는 모든 불행한 노인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종이의 발명으로 그는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식량이 더 생긴 것은 아니다. 오직 주어진 식량이 세대간에 더 효과적으로 배분된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지폐의 불가사의한 역할이란 태어나지 않은 모든 미래 세대와 맺은 계약에서 비롯한다. 즉 오늘의 노년 세대의 소득은 미래에서 구해지는 것이다.
사실 저축이란 세대간의 계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내가 젊어서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미래의 젊은이와 계약할 제도가 없다면 내가 젊어서 그 유능함을 이용하여 만든 그 많은 식량을 노후까지 안전하게 저장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젊을 때 노년을 생각하여 자동차 2대를 사놓는다 한들 30년이 지나면 엔진이 고철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냉장고를 2대 구입해 놓아 늙을 때를 대비한다고 해도 30년이 지난 후에 그 냉장고는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나중을 생각하여 쌀을 저장한다고 해도 40년 지난 쌀은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축이라는 것의 의미가 세대간의 계약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젊은이가 있기에 발톱 빠지고 이빨 빠진 나의 노년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이 계약을 국가가 대신해 준다고 나선 제도가 연금이다. 국가를 거대한 대가족으로 보는 것이다. 연금의 본질이란 이것이다. 그러니 연령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인가. 그런데도 늙은 사람이 일할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국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강제로 이루어질는지 몰라도 국가 전체로 볼 때 그 많은 노년의 입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는 원시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연령을 기준으로 직장에서 내모는 것은 법 앞에 남녀가 평등하고 노소가 평등하다는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 행위인데 이것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더욱이 핵가족 사회에서 노년의 인구 증가는 옛날 대가족 사회 시대와 달리 저축수단의 차질을 불러일으킨다는 추가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의 연령구조와 가족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근로연령을 무시한 획일적인 구조조정과 실업구조는 앞으로 연금구조를 교정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엇물려 있는데 어떤 것은 시장경제 틀에서 발생하고 어떤 것은 시장경제 틀 밖에서 일어나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연금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75년을 하나의 시간단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도 인구구조에 차질이 일어나자 연금수령 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상향조정했다. 그런데 1995년의 보고에서 사회보장기금이 2030년에는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하자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수령시기를 67세로 올려 잡았다. 그리고 연금의 개인적 측면을 존중해주는 제도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을 살펴보자. 연금에 가입한 개인은 자신의 돈에 대한 개별 계정에 대해 운용 권리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중앙집권적 제도에서 분권적 제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제도가 미국 상원의원 케리 Kerrey와 심슨Simpson이 제안한 법률안의 골자이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소규모 개인계정보다는 조금 큰 계정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다. 칠레와 페루가 채택한 방법이다. 이것은 연금제도의 私기업화를 의미한다. 세계은행도 1994년의 보고서에서 이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금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누가 내 돈을 관리해주는지조차 모르는 제도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기금의 수익률은 민간기금의 수익률보다 낮다. 그밖에 또 우리 나라 연금의 문제점은 연금 초기의 수혜자는 상대적으로 혜택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인연금이 대표적이다.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민연금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연금을 소득재분배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연금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더욱이 연금의 고갈과는 별개의 문제로, 연금 가입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금을 증권투자에 동원하고자 하는 발상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세계은행이 연금의 민영화를 지지하는 근거도 의회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국가가 관리하는 연금을 증권투자로 유용할 염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미국 학계에서도 국가연금의 증권투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연금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 되물어야 대답이 나온다. 연금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택하는 게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훌륭한 연금은 돈이다. 돈은 금융수단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은 미래 세대와 계약이지 미래의 위험과의 계약이 아니다. 미래소득을 현재로 이전하는 것이지 위험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소득은 평균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에 미래세대와 계약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미래세대의 미래소득이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의 계약관계는 그만큼 장애를 받는다. 일본의 노인들이 장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은 바로 미래와의 계약관계가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것이 본질이라면 연금은 위험이 들끓는 증권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또 하나 이 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연금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증권시장에 투자하느냐 마느냐도 개인이 결정해야할 사항이다. 미래의 계약관계를 국가가 대신한다는 것은 강제이고, 그 당위성은 옛날처럼 금융시장과 금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 달리 금융수단과 금융기법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금융시장이 국가 위주에서 민간위조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年金제도가 갖추어야 할 原理
저축이란 세대간의 계약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나라의 4대 연금이 2020년이면 고갈된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나왔다. 지금 열심히 일하여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는 40대가 퇴직할 나이가 될 때이니 문제가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그 이유를 보면 노령화 사회가 되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방되던 해의 한국인 남자의 평균 수명이 40세였다. 그때 대부분의 직장에서 55세까지 일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사기업이 별로 없고 공무원과 교직자가 상대적으로 많은 시절에 이들의 퇴직 연령은 평균수명보다 높았다. 그래서 일생을 걸고 그 직종과 계약한 것이다. 평균수명보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연령의 시대는 가고 없다. 이제는 일생에 몇 가지 직종에 종사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게 되려면 직장의 유연화와 노동의 유연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한국 사회는 미래로 진입할 수 없다. 그러나 어떤 사회로 진입하던 연금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어느 사회든지, 그것이 고대국가든 현대국가든, 서양사회든 동양사회든, 인구는 3층의 구조로 되어 있다. 일할 능력이 없는 노년층, 한창 일하는 장년층, 일하는 기술을 배우는 유년층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중간층인 장년층이 양측을 먹여 살린다. 다시 말하면 1세대가 일해서 3세대가 모두 먹고사는 법칙은 자연의 법칙이다. 이름하여 3분의 1의 법칙이다. 곤충학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개미의 경우에도 이 법칙은 적용된다고 한다. 일개미가 모든 개미 식구를 먹여 살리는데 그 수효가 3분의 1이라고 한다. 만일 일개미의 인구를 반으로 줄이면 병정개미가 일개미가 되어 3분의 1을 회복한다고 한다.
이 3분의 1의 법칙을 무시한 연금의 설계가 이렇게 만들었다. 더욱이 노년의 자연인구가 늘어난 점도 있겠지만 인위적으로 연령을 기준으로 직장에서 쫓아낸 인구를 포함하면 3분의 1의 법칙이 깨지는 것이 가속되어 왔다. 연금 수령의 연령이 60세인데 50대 초반에 일할 자리가 없어지니 이들을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인류의 역사 가운데 상당히 오래 동안 가족이란 공동체가 이 문제를 해결해 왔다. 젊은 세대는 일하여 노인을 봉양하고 자식을 기른다.
자신이 늙어지면 자신의 자식이 똑같은 방법으로 가족의 삶을 책임져 이어간다. 옛날에는 저축이라고 해봐야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것이 금융이다. 젊어서 일하여 만든 소득 가운데 일부는 소비하고 나머지를 여러 가지 형태로 저축한다. 저축 수단 가운데 돈의 형태야말로 으뜸이다. 돈은 사실 저축 수단으로 보기에는 흠이 많다. 대표적인 흠이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년을 대비한 저축수단의 돈을 으뜸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불가사의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득한 옛날 지폐도 없고, 다른 금융수단도 없고, 오직 자식에게만 의존하던 시절, 저축도 없고 자식도 없던 어느 노인이 종이에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여 젊은이를 설득하였다. 이 종이를 줄 테이니 나와 먹을 것을 교환하자고. 젊은이가 생각해 보니 그 종이조각을 받고 먹을 것을 교환한 후에 그 노인이 세상을 뜨면 누구에게 보상을 받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노인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나처럼 늙어지면 물론 나는 이 세상에 없겠지만 지금 내가 자네를 설득하는 것처럼 자네도 새로운 젊은이를 설득하여 자네에게 필요한 식량을 교환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하여 그 종이조각은 세대에서 세대로 넘겨져 오늘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면 이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만일 우리의 주인공인 노인이 그 종이조각을 발명하지 않았다면 그는 즉시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그후 자식이 없는 모든 불행한 노인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그 종이의 발명으로 그는 식량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식량이 더 생긴 것은 아니다. 오직 주어진 식량이 세대간에 더 효과적으로 배분된 것뿐이다. 다시 말하면 지폐의 불가사의한 역할이란 태어나지 않은 모든 미래 세대와 맺은 계약에서 비롯한다. 즉 오늘의 노년 세대의 소득은 미래에서 구해지는 것이다.
사실 저축이란 세대간의 계약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내가 젊어서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미래의 젊은이와 계약할 제도가 없다면 내가 젊어서 그 유능함을 이용하여 만든 그 많은 식량을 노후까지 안전하게 저장할 방법은 없는 것이다. 젊을 때 노년을 생각하여 자동차 2대를 사놓는다 한들 30년이 지나면 엔진이 고철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냉장고를 2대 구입해 놓아 늙을 때를 대비한다고 해도 30년이 지난 후에 그 냉장고는 기능을 하지 못할 수 있다. 나중을 생각하여 쌀을 저장한다고 해도 40년 지난 쌀은 먹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축이라는 것의 의미가 세대간의 계약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젊은이가 있기에 발톱 빠지고 이빨 빠진 나의 노년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이 계약을 국가가 대신해 준다고 나선 제도가 연금이다. 국가를 거대한 대가족으로 보는 것이다. 연금의 본질이란 이것이다. 그러니 연령의 구조가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인가. 그런데도 늙은 사람이 일할 자리를 빼앗아 버리면 국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강제로 이루어질는지 몰라도 국가 전체로 볼 때 그 많은 노년의 입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하는 원시적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 연령을 기준으로 직장에서 내모는 것은 법 앞에 남녀가 평등하고 노소가 평등하다는 헌법에 위배되는 위헌 행위인데 이것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더욱이 핵가족 사회에서 노년의 인구 증가는 옛날 대가족 사회 시대와 달리 저축수단의 차질을 불러일으킨다는 추가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인구의 연령구조와 가족구조를 고려하지 않은 연금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근로연령을 무시한 획일적인 구조조정과 실업구조는 앞으로 연금구조를 교정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엇물려 있는데 어떤 것은 시장경제 틀에서 발생하고 어떤 것은 시장경제 틀 밖에서 일어나서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 연금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75년을 하나의 시간단위로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도 인구구조에 차질이 일어나자 연금수령 시기를 60세에서 65세로 상향조정했다. 그런데 1995년의 보고에서 사회보장기금이 2030년에는 차질이 발생할 것이라고 하자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수령시기를 67세로 올려 잡았다. 그리고 연금의 개인적 측면을 존중해주는 제도로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것을 살펴보자. 연금에 가입한 개인은 자신의 돈에 대한 개별 계정에 대해 운용 권리를 갖고 있다. 말하자면 중앙집권적 제도에서 분권적 제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 제도가 미국 상원의원 케리 Kerrey와 심슨Simpson이 제안한 법률안의 골자이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소규모 개인계정보다는 조금 큰 계정을 만들어 관리하는 것이다. 칠레와 페루가 채택한 방법이다. 이것은 연금제도의 私기업화를 의미한다. 세계은행도 1994년의 보고서에서 이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 한마디로 연금에 시장원리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지금 우리처럼 누가 내 돈을 관리해주는지조차 모르는 제도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기금의 수익률은 민간기금의 수익률보다 낮다. 그밖에 또 우리 나라 연금의 문제점은 연금 초기의 수혜자는 상대적으로 혜택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인연금이 대표적이다. 발족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민연금도 마찬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것은 연금을 소득재분배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민간연금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 더욱이 연금의 고갈과는 별개의 문제로, 연금 가입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연금을 증권투자에 동원하고자 하는 발상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다. 세계은행이 연금의 민영화를 지지하는 근거도 의회가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국가가 관리하는 연금을 증권투자로 유용할 염려가 있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미국 학계에서도 국가연금의 증권투자에 대해서는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이 문제의 핵심은 연금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가 되물어야 대답이 나온다. 연금은 본질적으로 위험을 택하는 게 아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가장 훌륭한 연금은 돈이다. 돈은 금융수단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금은 미래 세대와 계약이지 미래의 위험과의 계약이 아니다. 미래소득을 현재로 이전하는 것이지 위험을 이전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소득은 평균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에 미래세대와 계약이 가능한 것이다. 만일 미래세대의 미래소득이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라면 노인세대와 젊은 세대의 계약관계는 그만큼 장애를 받는다. 일본의 노인들이 장래의 불확실성이 높아지자 소비를 하지 않고 돈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은 바로 미래와의 계약관계가 위험에 빠졌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한 것이 본질이라면 연금은 위험이 들끓는 증권시장과는 거리가 멀다.
또 하나 이 문제와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연금의 주체가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증권시장에 투자하느냐 마느냐도 개인이 결정해야할 사항이다. 미래의 계약관계를 국가가 대신한다는 것은 강제이고, 그 당위성은 옛날처럼 금융시장과 금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과 달리 금융수단과 금융기법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므로 금융시장이 국가 위주에서 민간위조로 바뀌어 간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학은 /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출처 - emerge 2002. 3. 평론
* 위 글의 내용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