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두율과 학자적 양심 - 박효종
	2003-10-07
송두율과 학자적 양심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가 북한노동당 정치국후보위원인가 하는 점에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그가 입국할 때만 해도 작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북한연구에 관해 그가 주장한 ‘내재적 접근법’에 대해 할말은 많았지만, 그의 학자적 모습과 진솔한 소신에 관한 한 믿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까닭이다. 북한을 ‘내재적 관점’으로 본다면 그동안 인류가 계몽화되는 과정에서 피땀 흘려 쌓아올린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 것인가. 혹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북한의 전체주의적 가치와 이념사이의 ‘경계인’이라는 개념이 도피주의적 태도는 아닐까. 이런 점들에 관해 의문이 많았지만, 학자적 양심과 소신에서 우러나오는 목소리를 표출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서는 지켜주고 싶었던 까닭이다. 비록 광야에서 부르짖는 외로운 목소리라고 하더라도 그 부르짖을 자유란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사회를 견지하는 한 소중히 해야 하는 관용과 다양성의 가치가 아닐까. 우리는 ‘다양성’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이지 ‘획일성’을 통해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하지만 사법당국의 조사에 임하는 그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이러한 기대는 무너지게 되었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에게서 학자적 양심에 걸맞은 진솔하고 당당한 태도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태도를 이리저리 바꾸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확인하게 된 것은 정말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왜 정정당당하게 처음부터 모든 걸 털어놓지 않고, 또 그동안 그를 둘러싸고 불거진 수많은 의혹들에 대해 명명백백하게 밝히지 않고, 감질나게 구체적 사안이 돌출될 때마다 마지못해 하나씩 둘씩 해명하는 궁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왜 사법당국과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는가. 우리가 이 시점에서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하는 숨바꼭질놀이를 보아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학자적 양심이란 무엇이 이득이 되고 무엇이 손실이 되는지를 엄정 비교하여 선택대안을 결정하는 ‘전략적 사고’와 다른 것이다. 자신의 이론이 비판받는다고 하여 시간과 장소에 따라 소신과 견해를 바꾼다면 학자적 양심과는 거리가 멀다. 학자라고 해도 잘못된 이론과 방법론을 취할 수도 있고 왜곡된 경험적 세계를 보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다. 비록 잘못된 이론과 방법론을 취하여 학문적 성취와 업적은 평가절하될 수 있다고 해도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 소신을 갖고 성실하게 추구한다면 그의 학자적 양심은 온전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천동설이 지배했던 사회에서 지동설을 주장하지 않았다고 해도 천동설을 주장하는 학자적 양심은 존중받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론 학자적 양심은 도덕적 양심과 같지 않다. 양심은 원래 어원적으로 con+science, 즉 자신 이외에 알고 있는 또 다른 존재가 있다는 뜻이다. 학자라도 일반사람처럼 말과 행동에 있어 실수할 수 있다. 음주운전을 할 수도 있고 여성비하발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학자적 양심이 도덕적 양심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일생을 학문에 헌신한 사람의 경우 음주운전이 경찰에 의해 발각되었을 때 진실을 인정하기보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거나, 변호사의 입회 없이 음주조사를 받았다고 강변하거나 심지어 외국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외국대사관의 도움을 받으려고 동분서주한다면, 그의 학자적 양심까지 흠집이 날 가능성이 농후하다. 지금 송두율 교수에게 ‘내재적 접근’과 ‘경계인’의 위상을 고집하는 학자적 양심과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도덕적 양심은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전략적 사고에 빠져 도덕적 양심이 마비된 사람으로 비쳐져 그의 학자적 양심까지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朴孝鍾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10.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