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은 국가비전 보여라 - 류동길
	2003-10-06
대통령은 국가비전 보여라 대통령은 국가를 이끌어 가는 최고 리더다. 리더는 골을 직접 넣는 골게터가 아니다. 유능한 선수를 골라 능력에 알맞은 자리를 맡겨 게임을 승리로 이끌어내는 감독이요, 모든 연주자가 필요한 때에 제 역할을 하게 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다. 그렇지만 대통령은 전지전능할 수 없다. 그래서 참모가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 스스로는 대통령은 강자가 아니란 말도 했다. 하지만 헌법에 규정돼 있는 권한만 해도 대통령은 막강한 힘을 행사할 수 있다. 강자가 아니라면 말 한 마디로 계속 추진돼 오던 국책사업 공사를 어떻게 중단시킬 수 있고 고속철도 역을 추가로 건설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최고 리더인 대통령이 갈등의 중심에 서 있기도 하고 대통령의 발언이 시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장관을 두고 “최대한 키워 주겠다”고 했고, “내게 법칙만을 강요하지 말라” “정부가 노동자에게 좀 양보했다 해서 무슨 죽을 죄를 지은 것처럼 몰아붙이느냐”고도 했다. 대통령이 어떻게 특정 장관을 키워준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장관을 비롯한 참모들은 어떤가. 위도 핵 폐기물 처리장 건설 문제로 부안군수가 집단폭행을 당하는 등 사태가 악화된 것도 주민들에게 현금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다. 산자부장관은 사태를 개선하고자 “위도에 대통령 별장 설립 건의를 검토중”이라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아이디어 수준의 정책 발표를 하지 말라는 청와대의 질책이 뒤따랐다. 판교 학원단지 조성 계획 발표와 이의 백지화 선언은 ‘신중하지 못한’ 정부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대통령 스스로도 유감을 표했는데 당시 해양수산장관은 “태풍 때 대통령은 뮤지컬을 보면 안 되나”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초중고 12년 동안 존경하는 선생은 한 명도 없었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선생들이 많은데 그 중 몇 놈 교장·교감되는 게 의미 있는가”라는 한심한 말을 하고, 이에 교사들이 항의하자 사죄하는 큰절을 하기도 했다. 결국 취임 2주일 만에 경질되는 웃지 못할 일도 일어났다. 법무장관은 민감한 시기에 “(송두율 씨가) 김철수라고 하더라도 처벌할 수 있겠나”라는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해서 사법 처리 방향을 미리 정해 놓은 것이라는 관측을 낳게 했다. KBS 사장도 송 교수를 미화(美化)하는 방송을 해서 국민에게 혼란을 주었다고 사과했다. 국방장관은 지난 1일 국군의 날 행사에서 대통령에게 우산을 받쳐 주는 모습을 보였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을 존경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경호원이 우산을 받쳐 주었거나 대통령이 직접 비를 맞았더라면 훨씬 멋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까지 살펴 보좌하는 참모가 없다는 게 아쉽다.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라크 파병 반대 입장을 밝혀 말썽이 나자 “사견”이라느니 “취중에 한 이야기”라고 했다. 대통령 비서의 말은 대통령의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비치게 돼 있다는 걸 모른다는 말인가. 장관들이나 비서진의 사려 깊지 못한 언동은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다. 임명권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른바 ‘코드인사’는 지난 시절 특정 지역 특정 학교 출신을 중용하는 인사에서와 같이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또 불안을 느끼게까지 한다. 국정을 펴나가려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로 팀을 짜는 것은 옳다. 그러나 코드는 국민에게 맞춰야 한다. 어떤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을 임명하면 “국가에 대해 죄를 짓는 것”이라는 게 일찍이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이 ‘자유론’에서 한 말이다. 국정 과제는 쌓여 있고 풀어야 할 과제는 계속 생겨난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일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심부름센터 수준’이라는 위도 주민 대표의 평가가 어쩐지 정곡을 찌르는 것 같다. 이제 경제 좀 챙기자. 수십만 명의 젊은이가 놀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의 미래가 보장되겠는가. 총선도 정치 개혁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죽으면 그 모두가 헛것이 된다. 무당적(無黨籍) 대통령이 민생과 경제 챙기기에 주력할 것이라고 한다. 국민은 지금 당장 어렵다고 참지 못하겠다는 게 아니다. 국민은 난국을 돌파하려는 리더의 의지와 비전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명예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10. 4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