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못길러내는 교육 - 김태기
	2003-09-26
인재 못길러내는 교육 최근에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학교 교육비의 비율은 우리나라가 미국을 앞질러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 학교가 아닌 학원 등에 쏟아붓는 사교육비까지 합치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돈을 교육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투자에 비해서 얼마나 성과를 내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자녀를 공부시키는 데 대해서는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지만 학생들이 졸업을 한 다음 진로는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청년들의 실업 문제가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나라에 속한다. 이것은 국가가 국민의 뜨거운 교육열을 장점으로 살리지 못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국민에게 교육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가 발전에 있어서 교육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해야 할 때가 왔다. 정부는 마치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잘못된 것처럼 학교를 통제해 왔다. 입학 제도는 물론이고 교육 전반을 틀어쥐고 있다. 반면 사회가 탐내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하는 학부모와 쓸 만한 인재에 목말라하는 기업의 기대는 외면해 왔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는 교육 문제에 대해서 자신감마저 잃었다는 느낌이다. 붕괴단계에 있는 학교를 되살릴 방안은 제쳐놓고 정부는 판교신도시에 학원단지를 만들겠다고 나선 바 있다. 이래서 정부가 공교육을 포기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게 된다. 교육 문제 때문에 강남밀집 현상이 심각해졌다면 차라리 강북의 교육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게 정석일 것이다. 교육정책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국민의 교육에 대한 기대와 국가 발전에 있어서 교육의 역할을 통합할 수 있는 큰 그림이 있어야 한다. 그 핵심은 인재를 키우는 교육으로 목표를 분명히하는 데 있다. 국민 입장에서 보면 학교를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 입장에서 보면 교육에 대한 투자가 경제 성장이나 국가 안보의 밑바탕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국 가운데서도 교육에 대한 투자가 많은 미국과 비교해 보자. 한국은 교육 따로, 노동시장 따로 움직이다 보니 교육에 대한 투자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력의 자질과 국력은 크게 떨어진다. 미국이 세계를 끌고 가는 국가가 됐고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경제의 견인차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교육이 인재 양성에 충실한 데 있었다. 높은 교육열이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동시에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농경시대에서 공업화시대로 넘어가는 단계에 만들어졌던 교육제도를 시대 변화에 맞추어 바꾸는 데 있다. 기업은 국경을 가리지 않고 투자를 하고 있다. 인재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 괜찮은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가 몰리는 원리를 교육 제도에 반영시켜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교육정책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과 경제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국민의 의식을 정부가 따라잡지 못하는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무교육의 확대나 형평성의 보장 등 소극적인 목표를 추구하다 보니 교육은 인재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똑똑한 학생을 평범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정부가 학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해 왔지만 학교는 붕괴돼 왔고 교육과 노동시장은 점점 멀어져 왔다. 학업 능력의 차이가 크다 보니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나 못하는 학생 모두 과외에 의존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교육을 통해서 배운 것과 일할 때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은 서로 달라 학력 수준은 높아졌지만 노동력의 자질은 그렇지 못했다. 인재를 키우는 교육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학교 운영은 물론 교육 내용에 대해서까지 정부가 일일이 간섭해서는 안 되며 학교가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 노력하도록 자율과 책임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학교장과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 능력 등에 맞추어 교육을 시키고 교육 성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학교의 학생 선발 제도였다. 따라서 정부는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확대하고 동시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잘하는 학생은 더 잘 하고, 잘 못하는 학생은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에 교육 기회의 형평성을 적극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9. 26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