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신도시 학원단지'라니 - 권대봉
	2003-09-26
'판교신도시 학원단지'라니 건설교통부가 판교신도시에 학원단지를 조성하여 서울 강남지역의 대체 효과를 노리겠다는 정책은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교육을 주관하는 교육인적자원부로서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강남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우수한 사회-문화적 인프라가 중요한 선택 요인이며, 좋은 학원들의 밀집현상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학원이 변수가 되는 이유는 고교평준화 교육정책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학원은 시장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시장성이 있으면 정부가 인위적으로 유치하지 않아도 모여들게 마련이고, 시장성이 없으면 유치하여도 모여들지 않을 것이다. 좋은 학원이 운집해 있는 동네가 인기 있는 지역이라면 학원보다 더 나은 학교를 만드는 것이 대안이다. 국민들이 좋아할 수 있는 학교를 전국 곳곳에 만들 수 있는 정책은 내놓지 않고 좋은 학원을 특정 신도시에 유치하겠다는 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매우 답답하다. 평준화정책이 시행되기 이전에 좋은 학교는 있었지만, 좋은 학원이 밀집하였기 때문에 주택가격 폭등이 사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간의 경쟁이 치열하였던 과거에는 공교육 황폐화란 말이 없었다. 그러나 평준화정책의 도입으로 학교간의 공적인 공교육 경쟁이 학생 개개인간의 사적인 사교육 경쟁으로 변모되자 사교육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학업능력 수준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을 추첨에 의하여 배정받은 학교 교사들은 중위권의 학생 수준에 맞추어 교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상위권과 하위권 학생들은 학교에서 학습을 포기하게 되고 사교육으로 보충하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자식에게 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사교육은 점차 번창하고, 공교육은 황폐화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평준화정책의 틀 안에서는 공교육이 사교육에 밀리게 되어 있다. 공교육이 살아 있는 비평준화지역이 지역 여론에 의해 평준화지역으로 바뀜에 따라 교육문제가 주택문제로 비화되었다. 분당, 일산, 안양 등 수도권의 신도시지역들이 추첨배정으로 제도를 바꾸자마자, 신도시지역의 주민들이 대거 강남으로 몰려들어 주택가격이 폭등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건설교통부는 판교신도시에 사교육 단지 유치라는 카드를 내놓았을 것이다. 대안은 좋은 학원보다 더 좋은 학교를 전국 곳곳에 만드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평준화의 틀을 깨고 다양성을 도입해야 한다. 어떤 지역을 여론조사에 의해 평준화지역이나 비평준화지역으로 지정하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평준화지역의 공교육은 부실해지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동일한 지역 내에 다양한 형태의 평준화학교와 비평준화학교를 두어 학생들로 하여금 선택할 수 있게 한다면, 교육문제와 주택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동일지역 내에 평준화된 고등학교는 물론 학생의 선택에 의해 진학할 수 있는 비평준화된 고등학교를 다양하게 인정하여 국민들이 학원보다 학교를 더 좋아하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할 일이다. 몇몇 개인이나 법인이 만드는 학원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 역량이 정부에 있지 않은가. 문제는 정책이다. 평준화정책을 고수한다면 국민은 사교육의 고통에서 해방되기 어렵다. 평준화정책의 틀을 깨야 좋은 학원보다 더 좋은 학교가 생길 수 있다. 좋은 학교가 전국 곳곳에 생겨야 주택문제도 해결될 것이고 부모들과 아이들도 사교육의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다. 權大鳳 (고려대 교육학 교수 / 시민회의 교육포럼 회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9. 2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