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집잡기에만 치중하는 국정감사 - 윤종빈
	2003-09-25
트집잡기에만 치중하는 국정감사 그 동안 지겹도록 정치 개혁과 서민 경제의 발목을 잡았던 여권의 분열이 '국 민참여통합신당'의 출범으로 막을 내렸다. 새로운 정당체계에서의 4당은 지난 22일 시작한 국정감사에서 제각기 '민생국감'을 치르겠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 다. 그러나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과 태풍 '매미'에 깊게 상처받은 국민 들은 예년과 다름없는 '부실 국감'에 대한 우려로 마음을 조이고 있다. 한동안 폐지되었던 국회의 국정감사권은 88년에 부활돼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 시하는 제도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국정감사는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해 부활 이 지금까지 그 효율성과 생산성에서 별다른 진전 이 없었다는 불명예를 씻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부실 국감'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지나치게 많은 피감기관 선정과 이에 따른 실질적인 감사시간 부족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국정감사도 22일에 시작해 다음달 11일에 끝나 법적으로는 1년 동안 20일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공휴일 등을 제외하면 평균 17일에 불과하고, 감사 준비기간도 감사계획서가 확정된 후 감사 개시일까지 평균적으로 6~7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짧은 감사 준비기간과 감사기간에도 불구하고 국정감사 대상기관은 연 평균으로 보면 13대 국회에서는 327개, 14대 국회 326개, 15대 국회 327개, 16 대 국회의 첫 해인 2000년은 357개, 2001년은 402개, 올해에는 392개에 달한다 . 상임위원회별로 실시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짧은 기간에 피감기관 수가 지나치게 많다는 것은 부실감사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국정감사가 실제로 실시된 시간을 보더라도 13대 국회에서는 연평균 1177시간, 14대 국회는 1194시간, 15대 국회는 1024시간, 16대 국회는 초기 2년 동안 연 평균 1273시간에 불과하다. 피감기관 수와 함께 간단한 산술을 해보더라도 피감기관 1개당 대략 4시간에 못 미치는 감사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결과다. 물론 국정감사 실시 이전에 충 분한 준비기간을 갖는 의원도 있지만 대부분 의원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하기에 '부실 국감'은 초래될 수밖에 없다. 이번 국감도 예외일 수 없을 것 으로 보인다. 국정감사 부실화의 또 다른 이유로는 피감기관에 대한 과다한 자료제출 요구다 . 국정감사가 부활된 이래 자료제출 요구 건수는 급격히 증가하는 추세다. 13 대 국회의 총자료요구 건수는 1년 평균 1만7923건에 불과했으나 16대 국회 초 기 2년 간의 평균은 3배 이상 증가해 무려 6만2022건에 달한다. 16대 국회 2년 간 의원 1인당 연평균 200건 정도를 요청했고 이는 피감기관당 연평균 약 165건의 자료제출 요구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친 자료제출 요구는 의원들의 권위주의적 특권의식에 기인한다는 비판과 함께 피감기관의 부실한 자료제출과 행정업무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특정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제출 요구가 틈?모든 내용에 대한 과다 한 제출요구는 국정감사 실효성과 이를 통해 확보할 수 있는 국회의 권위를 스 스로 저하시킨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권위를 앞세우기보다는 전문성으로 행정부를 압박하는 것이 존경받는 국회가 될 수 있는 요건일 것이다. 그러나 '부실감사'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여ㆍ야간의 불필요한 정쟁이다. 국회는 지난 8월 이후 지금까지 국감준비는커녕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동료의 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 국회에만 정성을 쏟았다. 이제 정작 국정감사를 수행해야 할 때지만 각 정당은 국정감사를 상대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무책임한 비방과 폭로를 통한 정국주도권 다툼의 장으로 활용하 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도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 '현대 비자금 사건' '양길승 전 청와대 부속실장 향응 사건' '이기명 씨의 용인 땅 의혹' 등에 대한 증인 채택 과 이에 따르는 정치적 공방이 국감장을 '싸움장'으로 전환시킬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신당 출범으로 새로운 4당체제가 형성된 불안정한 상황에서 의원들은 내년 총 선을 겨냥해 지역구 다지기에 급급하고 예년과 다름없이 국감은 뒷전으로 밀려 나고 있는 분위기다. 지금까지 치열한 '신당 싸움'에 온 정열을 쏟아부었던 민주당과 신당 의원들은 국감에 투자할 새로운 에너지가 없어 보인다. '용퇴론'으로 어수선한 한나라당 의원들도 새로운 정치 환경에서의 손익 계산에 분주하고 국감에 대한 실질적인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과연 언제쯤 국민들의 한마당 축제로서 '정책국감' '민생국감'이 정착될 수 있 을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이 가을에 마음을 추스려 본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9. 25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