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軍으로부터 배우자! - 한영탁
2003-09-24
海軍으로부터 배우자! 초속 40-60m의 강풍과 180mm의 폭우를 동반한 태풍 ‘매미’호가 국토를 무자비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재해지역의 참상은 그야말로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다. 정부는 22일 서울, 인천을 제외하고 부산시를 비롯한 전국 14개 시, 도의 156시, 군, 구 1657개 읍, 면, 동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매미’가 남기고 간 재해가 얼마나 엄청난 규모인지 짐작하게 해준다. 공식 집계된 사망, 실종자 수는 130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는 무려 4조 7810억원이라고 한다. 이재민도 1억 2000명에 달한다. 자연의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를 새삼 실감케 해준다. 하지만 재해 대비 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는 사회는 똑같은 자연의 재앙이라도 피해를 최소로 줄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우리보다 더 자주 태풍을 겪는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해마다 카리브에서 발생하는 열대성 폭풍, 즉 허리케인에 시달리는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보다 앞서 매미에 강타당한 일본 오키나와의 경우, 인명피해를 사망자 한 명에 부상자 90명으로 줄일 수 있었다. 이보다 열흘 앞서 초특급 태풍 ‘두줸(杜鵑)’에 강타당한 홍콩에서는 사망자가 단 한 명도 나지 않고 부상자만 10여명 나왔을 뿐이다. 모두가 관계당국의 빈틈없는 사전 방재(防災) 대책 덕택이었다. 지난 18일 ‘매미’호보다 더 위력적인 초대형 태풍 ‘이사벨’이 상륙한 미국의 동부해안 지역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피해가 났다.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및 델라웨어주(州)와 워싱턴 DC가 주요 재해지역으로 선포되었다. 450만 가구와 사무실이 정전 피해를 보고 2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하지만 사망자는 36명으로 그쳤다. 우리의 피해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을 더 강한 태풍이 휩쓸고 간 것을 고려할 때, 인명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연방재난관리청(FAMA)을 비롯한 관계 당국이 이사벨의 상륙 사흘 전에 신속, 철저한 대비태세에 돌입한 결과였다. 태풍 통과 예상 지역인 노스캘로라이나, 버지니아, 메릴랜드, 델라웨어, 버지니아주(州)와 워싱턴 DC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주방위군과 경찰이 비상경계에 들어가고 공항을 폐쇄하고 항공기와 선박을 대피시켰다. 주민에 대한 대피령을 내리고 강제 소개령을 발동했다. 지하철, 철도, 버스 등이 운행도 임시 중지되고 위험 지역의 교량과 학교도 폐쇄되거나 통행이 제한되었다. 공공기관과 학교가 휴무 및 휴교에 들어갔다. 우리도 중앙재해대책본부를 두고 있다. 재해대비 3단계 비상조치 등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조치들이 신속하고 일사분란하게 시행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해마다 큰 자연재해를 겪으면서도 대비 조치들은 굼뜨고 무사안일의 형식주의로 흐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간의 손발도 맞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사회 곳곳에 팽배한 안전 불감증이 재난 피해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철저한 대비로 태풍 피해를 면한 모범적인 본보기를 우리 해군의 경우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전국에 걸쳐서 500여척의 크고 작은 어선과 유조선, 화물선이 침몰하거나 유실되고 파괴되었다. 그러나 해군은 일찍이 매미호의 위력과 진로를 기상자료와 태풍관련 자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면밀히 분석하여 해상에 출동한 500여척의 함정을 신속히 진해, 평택, 동해항 함대사령부 등지로 불러들여 단 한 척의 함정도 피해를 입게 하지 않았다. 150척의 어선을 육지로 끌어올려 재해를 피하게 한 울산시의 한 하급 공무원의 헌신적인 예에서도 천재(天災)는 있어도 인재(人災)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신의 중요성을 읽게 해준다. 정부는 이제 와서야 소방방재청의 설치를 입법예고 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의 처방을 서둘고 있다. 하지만 해군이나 한 공무원이 보여준 그런 헌신적인정신 자세가 없으면 그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해군으로부터 배우자!” “울산시 북구 수산계장에게서 배우자!” 韓永鐸 (칼럼니스트/번역가/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대한언론인회보 2003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