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의 목마 - 유석춘
	2002-05-16
트로이의 목마 고대 그리스의 영웅 서사시에는 그리스와 트로이 간에 있었던 10년간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여자인 왕비를 트로이의 왕자에게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은 그리스의 왕인 형과 함께 아내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 정복에 나선다. 트로이 성을 사이에 두고 사력을 다하던 전쟁은 그러나 그리스의 한 장수의 계략으로 마침내 마지막을 맞게 된다. 그리스 군이 거대한 목마를 남기고 어느 날 갑자기 철군을 하기 때문이다. 이에 속아넘어간 트로이 군은 성문을 열고 전리품인 목마를 들여놓고 승리의 기쁨에 취한다. 그러나 새벽이 되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군이 몰래 빠져 나와 성문을 열고 때맞춰 대기하고 있던 그리스 군을 거꾸로 불러 들여 트로이 성은 쑥대밭이 되고 만다. 결국 전쟁은 그리스의 승리로 마무리된다. 이후부터 ‘트로이의 목마’는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위장 전술과 전략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특히 외부의 요인에 의해 내부가 무너지는 상황을 빗댈 때 자주 사용된다. 그렇다면 왜 이 자리에서 ‘트로이의 목마’를 거론하여야 하는가. 최근 진행되고 있는 우리의 정치 상황이 ‘트로이의 목마’를 자꾸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몇 가지 구체적인 상황을 가지고 설명해 보자. 선거의 계절을 맞이하여 입 달린 국민 모두 지역주의적 투표행위를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 입후보할 후보는 물론이고 그들이 소속된 정당 그리고 나아가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국민 모두 사실은 지역주의에 기반한 투표행위를 기초로 득표의 전략을 세우고 있고 또한 지지의 준거로 삼고 있다. 세상이 다 아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모두들 지역주의를 거부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호남이 기반인 정당에서 영남 출신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사실을 놓고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은 영남이 기반인 정당에서 충청 출신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한 사실을 놓고 지역주의를 넘어서고자 하는 신선한 시도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그렇다면 왜 노무현 후보는 선출되자마자 YS를 찾아 신민주연합을 거론하며, 또 왜 이회창 후보는 고비마다 부산과 대구에서 장외집회를 하는가? 한 걸음 더 나가보자. 최근 입 달린 국민 모두 이제는 지역주의를 뛰어 넘어 정책 대결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후보의 출신지역이나 소속정당이 상징하는 지역성을 넘어서서 이제야말로 후보가 내세우는 정책을 놓고 또한 그것을 자신의 사회경제적 위치와 교차시켜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후보의 계층적 성향과 자신의 계층적 위치를 생각해 투표하라는 이야기다. 더 솔직히 말하면 하층은 노무현, 상층은 이회창을 각각 지지하라는 충고다. 그러나 하층은 많고 상층은 적다. 그러니 결국 이 충고는 이회창 후보에게 불리한 충고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정말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대한민국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까. 혹시 이들이 내세우는 정책대결에 의한 투표가 결국에는 ‘트로이의 목마’가 되어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들에게 내부의 짐으로 되돌아오지는 않을까? 예컨대 노무현 후보가 내세우는 신민주연합이 영남을 공략하기 위한 호남의 ‘트로이의 목마’일 가능성은 과연 없는가? 또한 노무현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서민층을 대변한다는 복지노선이 결국에는 인기영합으로 치달아 선거 후 우리 경제가 남미와 같은 길로 가게 만드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가능성은 없는가? 서민을 위한다는 정책이 결국 서민층의 일자리 자체를 박탈하는 결과로 나타날 가능성은 과연 없는가? 선거의 계절은 어쩔 수 없는 의심의 계절이기도 하다. 柳錫春 (연세대 교수·사회학 / 시민회의 일하는복지사회운동본부 본부장) 출처 - 조선일보 2002. 5. 16 아침논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