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리더십 보여야 - 정진영
	2003-09-17
당당한 리더십 보여야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가 한국사회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파병에 대한 찬반여론이 팽팽한 가운데 정치권은 또다시 여론의 흐름을 살펴가며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중차대한 국정현안을 두고도 궂은 일이라면 누구도 책임지기를 싫어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최근 한국정치의 폐단이 또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의 해결방향은 이미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대통령은 결국 국익을 내세우며 마지못해 파병을 결정할 것이고, 그의 지지세력은 명분을 앞세워 파병에 반대할 것이며, 야당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파병에 찬성할 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오늘날 한국정치의 비극을 잘 보여준다. 대통령이 국가의 주요 정책을 결정하면서 왜 핑계를 대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처한 대내외적 현실에서 국가이익을 위한 길이라면 떳떳이 결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리더십을 보여야 마땅하다. 지도자는 정책을 선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위치에 있다. 그러한 자세를 보일 때 국민은 지도자를 이해하고 리더로 인정하는 팔로우십을 보일 것이다. 대통령의 정책선택과 이에 대한 지지자들의 반대 또한 오늘날 한국정치의 아이러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가. 대통령이나 그 지지자들이 마음속으로 하고 싶어하고 선거에서 내세웠던 정강정책이 대한민국이 처한 대내외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동북아 경제중심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시장개방을 해야 하고,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협조해야 하지만, 대통령의 지지세력이 갖고 있는 이념적 정향은 이와 맞지 않다. 야당인 한나라당은 왜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떳떳이 주장하고 나오지 못하는가. 거대 야당이지만 이념적 수세에 몰려 있고, 정부의 잘못으로 어부지리하는 구태의연한 모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대통령제 권력구조에서 야당이 먼저 정책결정을 하고 나올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하다. 파병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우리 정부의 대미 협상력을 높여 줄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야당의 어정쩡한 태도가 전략적 고려에 따라 선택되고 조정된 행동이 아니라 정말 우유부단하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막대한 국력낭비를 초래할 뿐이다. 파병에 대한 찬반입장은 나름대로의 진실을 갖고 있다. 파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주권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며 이번 기회에 미국에 노(NO)할 수 있는 한국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파병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한미동맹의 현실과 국익을 강조한다. 외교노선을 둘러싼 보수-진보간의 이러한 논란은 대개 한국의 군사적-경제적 능력에 대한 평가의 차이에 기인한다. 진보세력은 현재 한국의 국력에 대해서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미국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외교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보수세력은 한국의 자주능력에 대해서 회의적이며, 따라서 아직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추구해야 될 때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서로를 그토록 미워하고 헐뜯게 만들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안타깝다. 정부는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까지 파병에 대한 결정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코너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결정한다고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리더십 부족을 탓하고 국정혼란에 대한 책임추궁이 증가할 따름이다. 따라서 어차피 할 수밖에 없는 결정이라면 당당하게 파병결정을 내리고, 파병과 관련된 대미협상은 실무차원에서 치밀하게 추진하라. 동맹정신을 보여주면서도 실리를 챙기는 현실적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은 지지와 보상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화된 나라다. 鄭璡永 (경희대 국제정치학 교수) 출처 - 세계일보 2003. 9. 17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