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파병` 당당한 접근을 - 박효종
	2003-09-15
`이라크 파병` 당당한 접근을 파병이라는 국가적 난제가 추석 이후의 정국을 뜨겁게 달굴 전망이다. 미국의 부시행정부가 최근 한국을 비롯한 29개국에 대해 이라크에 추가로 파병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한국에 요청한 병력은 수천 명 규모의 여단급 전투병이다. 이번 파병문제는 지난 4월 1차 때의 파병문제와 같지 않다. 지난번 대상이 공병대와 의료부대의 파병이었다면, 이번에는 전투병 파병이고, 또 어떤 측면에서 보면 현 이라크의 상황이 전쟁 당시의 상황보다 훨씬 불안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과거처럼 미국과 다른 서방 국가들 사이의 다툼이 심하지는 않다.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 미국 주도의 이라크 평화결의안을 제출하고, 이에 맞서 프랑스와 독일도 유엔 주도의 이라크 평화결의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이 그렇게 완강하지는 않아 두 개의 결의안이 절충돼 하나의 결의안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논란은 격렬했던 과거와 달라질 것인가. 그 때에 비해 파병문제를 다룰 우리의 사회·정치적 여건은 좋아졌는가. 유감스럽게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파병에 대한 찬반 태도가 한미동맹, 북핵문제,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고려한 국익의 관점에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거의 사례로 보아 이번에도 파병에 관한 태도가 이념적 좌표에 따라 정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 그 당시보다 우리 사회의 보혁갈등은 오히려 심화된 느낌이다. 진보와 보수 세력은 국가의 기념일마다 따로따로 대규모의 적대적 집회를 가질 정도로 갈등관계를 빚고 있는 중이다.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북한 참여를 둘러싼 대통령의 유감 표명으로 인해 악화된 보·혁 갈등도 파병문제에 난관이 되면 됐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런가 하면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 집권 여당이 신당문제로 인하여 몇 달째 홍역을 앓으면서 국가 어젠다 설정이나 정국 주도력을 상실한 것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민생문제 해결에 주력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파병문제는 민생문제도 아니고, 행정문제도 아닌 ‘정치적 문제’인 것이다. 참여정부는 당·정 분리라고 해서 이 중요한 문제에서 공을 정치권에 던지고 반응을 기다리듯 해서는 안 된다. 당·정 분리란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소화하고 삼권분립을 존중하기 위한 것일 뿐, 국익을 위한 고뇌의 결정에서 몸을 사리는 변명의 논리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지난 4월의 파병 결정에서는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반대했던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과 보수 세력이 한미동맹의 정신을 살리자며 파병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한편,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여당과 진보 세력이 평화와 반전을 내세우며 파병을 격렬하게 반대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었다. 우여곡절 끝에 파병이 결정됐지만 그렇다고 4월의 파병 결정을 소수 정권이 국익에 입각한 비전을 내세우며 이념적 정체성을 초월해 다수파인 야당과 연대한 정치 현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이라크파병이 야당과의 정책연합으로 발전된 것도 아니고 참여정부의 ‘코드정치’가 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참여정부는 한국 사회에 팽배해진 반미 감정으로 말미암아 한미동맹 관계가 깨질까봐 초조해진 보수층의 우려와 정서에 ‘무임승차’했다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당연히 그 후 정부와 야당의 관계는 정책공조는커녕 어느 정권에서도 보기 어려울 만큼 ‘막말을 주고 받는’ 살벌한 관계로 돌아섰다. 더욱이 최근 행자부장관의 진퇴문제와 관련, 정부는 야당에 대해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겠다며 일전불사를 다짐하고 있는가하면, 야당은 지난번처럼 총대를 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의 리더십은 야당뿐만 아니라 사회 도처에서 끊임없이 도전받고 있는 상황이다. 두 번에 걸친 물류대란,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선정을 둘러싼 논란과 부안군수 폭행 문제, 세계무역기구(WTO)와 쌀개방 문제 등 녹록한 것이 없다. 이번에 정부는 어떻게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인가. 어떤 입장이든 스스로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되는 대안에 대해 좌고우면(左顧右眄) 할 것 없이 정정당당하게 입장을 정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노력에 앞장서는 정부의 모습을 보고 싶다. 정부가 토론과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하며 결코 논의의 주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참여정부가 책임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방식이고 국가적 난제 해결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방안일 터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9. 1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