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해결 ‘바람직한 모델’ - 제성호
	2002-05-15
탈북자 해결 ‘바람직한 모델’ 최근 중국에서 외국 공관을 이용한 탈북자들의 기획망명이 줄을 잇고 있다. 외국공관 진입에 의한 필사의 탈출 노력은 중국 공안당국의 체포와 강제송환 위협에 처해 있는 탈북자들이 자유와 생존을 위해 벌이는 처절한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이 대규모의 탈북자 존재를 부인하고, 이 문제를 변경지역의 질서유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데 그 근본원인이 있다. 그동안 중국은 탈북자들이 불법 월경자일 뿐 ‘국제법상의 난민’이 아니라는 기본입장에서 1986년 ‘변경지역관리의정서’(조·중 공안당국간의 비밀협정)에 따라 탈북자들을 강제송환해 왔다. 계속되는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의 탈북자에 대한 난민 불인정 입장 고수가 오늘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탈북자들의 외국공관 경유 한국행 추진은 우리 정부가 ‘조용한 외교’를 내세워 중국의 처분을 기다리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한 것과도 무관치 않다. 따지고 보면 기획망명은 우리 공관이 탈북자 처리 문제에서 중국의 눈치를 보다가 뒷수습만 하는 저자세에 대한 ‘분노의 표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현재의 해결방식을 고집하면 앞으로도 선양(瀋陽) 일본 총영사관의 케이스와 같은 외교적 곤경에 처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은 인권을 외면하는 국가라는 비판과 더불어 강대국으로서의 위상과 체면에 손상을 입을 것이다. 출입국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북한도 탈북자의 강제송환에만 주력할 경우 인권 최빈국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양자외교를 통한 ‘조용한 해결’은 최근 일련의 기획탈출 사태에서 보듯이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그것은 인권 보호에 충실한 일관성 있는 처리를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보다 능동적인 자세로 탈북자 외교에 나서야 한다. 탈북자 문제의 해법은 국제공론화를 통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개입과 ‘국제관리’에서 찾아야 한다. 이와 관련, 인도차이나 난민에 대한 UNHCR의 개입과 국제적 관리(포괄적 행동계획 마련 등), 중미 및 CIS지역 난민 처리는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선례이다. 탈북자들은 그 전부가 지난 51년 발효된 난민협약상의 ‘정치적 난민’은 아닐지라도 인도적 구호·지원을 필요로 하는 ‘인도적 난민’ 내지 ‘국제적 실향민’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전세계 각지에서 난민구호 업무를 수행하는 UNHCR의 개입이 허용되어야 한다. UNHCR 개입을 통해 현지에 탈북자 수용시설을 설치하고, 여기서 숙식과 신변보호, 최소한의 교육·훈련을 제공토록 해야 한다. 국제적인 지원단체들과 연계체제를 구축, 민간 역량을 최대한 활용한다면 재정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조·중 접경지역에 남북한 및 중국 3자가 합영 방식으로 농장이나 기업을 설치하고 탈북자들을 흡수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UNHCR의 개입은 중국의 일방적·자의적인 판단을 배제하고 탈북자 문제를 비정치화하는 장점을 갖는다. 또한 탈북자들의 신변안전 위협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주의를 구현할 수 있다. 다만 UNHCR 개입이 실현될 경우 우리 정부와 민간단체는 탈북자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탈북자 스스로의 노력으로 한국 땅을 밟을 경우 이를 수용해야 하겠지만, 결코 북한 엑소더스를 촉진해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는 베트남 귀환 난민처럼 북한당국의 불처벌을 조건으로 탈북자들의 자발적 귀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옮겨가야 한다. 그래야 ‘탈북자 빼내오기’라는 북한측 비난을 피하면서 남북관계 안정화 및 발전을 도모할 수 있고 UNHCR 개입 모델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탈북자 문제의 ‘다자문제화’에 대한 중국의 동의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관련국들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중국과 북한 설득에 적극 나선다면 반드시 길이 열릴 것이다. 필요하다면 유엔이나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의 압력과 민간단체들을 활용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경향신문 2002.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