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휘의 선택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정책을 논의할 때는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차가 많아 차가 막힌다고 말하면 차량 대수를 줄이는 것이 처방이 된다. 그러나 차가 막히는 것은 차가 많아서가 아니라 차를 타고 많이 돌아다녀서다. 소득 양극화가 문제라고 하니까 격차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빈곤이고, 빈곤 해소가 목표가 돼야 한다.
요즘 정책 논의 과정에서의 어휘 선택 오류가 바로 정부 규제다.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규제가 많아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현재 정부에 등록된 규제가 몇 개이고 그동안 몇 개나 늘었다는 식의 보도가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규제를 없애고 줄이는 것이 규제개혁인 것처럼 인식됐다. 또 정부 규제를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라고 표현하다 보니, 이것들을 뽑아 없애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 결과 이제는 규제개혁이 손톱 밑 가시나 전봇대를 뽑는 불편 해소 차원의 민원행정이 돼 버렸다.
우리나라 규제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총량이나 불합리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우리나라 규제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양보다 질이다. 그리고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가 발생하게 되는 정부 내 관료주의와 행정 편의 문화가 배경이다.
지킬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 무엇 하나라도 하려면 여러 기관에서 달려드는 중복 규제, 일단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고 만들어진 획일적 사전규제, 법적 근거도 없이 자율협약 형식으로 민간에 가해지는 각종 간섭, 복잡하고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규정, 이런 불량 규제들이 비록 적은 숫자라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규제개혁 시스템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그동안 규제개혁은 현 정부도 그렇지만 주로 경제단체가 정부에 이런저런 규제를 풀어 달라고 건의하면, 정부는 건의안들 중에 선별적으로 선심 쓰듯이 조금씩 풀어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사소한 규제들만 없어지고 고강도의 불량 규제는 대부분 그대로 남아 규제 총량은 줄어도 체감 규제는 변함없는 한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사소한 규제 몇 개를 민원 해소 차원에서 찔끔찔끔 풀어주는 민간 읍소형 상향식 개혁이 아니라 규제를 집행하는 부서가 규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민간의 관점에서 입증해야만 규제가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하향식 개혁이 돼야 한다.
민간 관점의 규제개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국회는 규제만능주의에 빠져 오히려 고비용ㆍ저효율의 불량 규제를 대량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각종 명분으로 도입하는 많은 규제입법들이 규제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민간 위에 군림하는 갑의 관점에서 마구 도입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보호, 골목상권 보호, 일자리 보호와 같은 좋은 취지를 내세워 수많은 규제들이 도입됐지만, 이미 이들 규제 중 상당수가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면서 국민 생활과 국민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규제들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불량 규제 덩어리가 될 것이다.
행정부에는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 품질관리 기능을 15년째 하고 있지만, 이런 품질관리 기능이 국회의 입법과정에는 아예 없다. 이제는 국회에서도 입법과정에 규제에 대한 품질관리 절차가 필요하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 교수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매일경제 2013. 11. 17 기고
어휘의 선택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정책을 논의할 때는 문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따라 처방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차가 많아 차가 막힌다고 말하면 차량 대수를 줄이는 것이 처방이 된다. 그러나 차가 막히는 것은 차가 많아서가 아니라 차를 타고 많이 돌아다녀서다. 소득 양극화가 문제라고 하니까 격차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이 목표가 된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빈곤이고, 빈곤 해소가 목표가 돼야 한다.
요즘 정책 논의 과정에서의 어휘 선택 오류가 바로 정부 규제다.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규제가 많아서 기업하기 힘들다고 한다. 언론에서는 현재 정부에 등록된 규제가 몇 개이고 그동안 몇 개나 늘었다는 식의 보도가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규제를 없애고 줄이는 것이 규제개혁인 것처럼 인식됐다. 또 정부 규제를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라고 표현하다 보니, 이것들을 뽑아 없애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 결과 이제는 규제개혁이 손톱 밑 가시나 전봇대를 뽑는 불편 해소 차원의 민원행정이 돼 버렸다.
우리나라 규제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총량이나 불합리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우리나라 규제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양보다 질이다. 그리고 전봇대나 손톱 밑 가시가 발생하게 되는 정부 내 관료주의와 행정 편의 문화가 배경이다.
지킬 수도 없는 비현실적인 기준과 절차, 무엇 하나라도 하려면 여러 기관에서 달려드는 중복 규제, 일단 모든 국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고 만들어진 획일적 사전규제, 법적 근거도 없이 자율협약 형식으로 민간에 가해지는 각종 간섭, 복잡하고 모호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규정, 이런 불량 규제들이 비록 적은 숫자라도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부정부패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규제개혁 시스템부터 제대로 갖춰야 한다.
그동안 규제개혁은 현 정부도 그렇지만 주로 경제단체가 정부에 이런저런 규제를 풀어 달라고 건의하면, 정부는 건의안들 중에 선별적으로 선심 쓰듯이 조금씩 풀어주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사소한 규제들만 없어지고 고강도의 불량 규제는 대부분 그대로 남아 규제 총량은 줄어도 체감 규제는 변함없는 한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규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사소한 규제 몇 개를 민원 해소 차원에서 찔끔찔끔 풀어주는 민간 읍소형 상향식 개혁이 아니라 규제를 집행하는 부서가 규제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민간의 관점에서 입증해야만 규제가 존속할 수 있도록 하는 하향식 개혁이 돼야 한다.
민간 관점의 규제개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국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국회는 규제만능주의에 빠져 오히려 고비용ㆍ저효율의 불량 규제를 대량 도입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최근 정치권에서 각종 명분으로 도입하는 많은 규제입법들이 규제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면밀한 평가 없이 민간 위에 군림하는 갑의 관점에서 마구 도입되고 있다.
경제민주화, 중소기업 보호, 골목상권 보호, 일자리 보호와 같은 좋은 취지를 내세워 수많은 규제들이 도입됐지만, 이미 이들 규제 중 상당수가 목적은 달성하지 못하면서 국민 생활과 국민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런 규제들은 두고두고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불량 규제 덩어리가 될 것이다.
행정부에는 규제개혁위원회가 규제 품질관리 기능을 15년째 하고 있지만, 이런 품질관리 기능이 국회의 입법과정에는 아예 없다. 이제는 국회에서도 입법과정에 규제에 대한 품질관리 절차가 필요하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 교수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매일경제 2013. 11. 17 기고
<원문>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3&no=11435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