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민주주의' 위기 - 김석준
	2002-05-15
'풀뿌리 민주주의' 위기 풀뿌리 민주주의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전북지사와 대구울산인천 시장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줄줄이 비리혐의로 구속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러 단체장들이 비리에 연루된 것은 서로 다른 이유가 없지 않지만 출발에서부터 과다한 선거비용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 때문이다. 이는 돈 쓰는 중앙정치의 부패고리가 지방정치에서도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게다가 혼탁한 정치에 식상했던 국민들에게 신선한 대안으로 폭 넓은 지지를 받아왔던 시민단체들마저 그 지도자중 일부가 지방선거에 참여하게 되면서 미성숙한 시민사회의 뿌리마저 흔들리고 있다. 시민사회가 성숙한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시민단체들의 정치참여가 자연스럽고, 그것을 통해 정치민주주의를 뿌리내리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다르다. 아직 시민단체들이 '시민없는 시민단체'와 '백화점식 시민운동', 그리고 '자립성이 약한 시민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오직 국민들의 높은 기대와 평가에 힘입어 지나치게 그 영향력이 크게 인정받을 뿐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힘을 과신하여 많은 국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정치참여를 강행하는 것은 설익은 시민사회의 뿌리를 송두리째 뽑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대로는 안 된다. 특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선 및 15대 대선을 앞둔 정치의 해인 금년에 정치비리를 막고 시민사회를 튼튼히 하는 기본적인 조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첫째, 구조적 정치비리를 극복하기 위해 선거공영제를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지방선거는 물론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 등 모든 선거를 공영제로 운영하고 '돈 안드는 선거'를 제도화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정치의 꽃이다. 이 꽃이 비리라는 벌레로부터 벗어나 싱싱하게 활짝 피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거공영제를 실시하여 후보자들이 비리에 연루될 소지를 원천적으로 제거해야 한다. 둘째, 시민사회가 뿌리를 바로 내리도록 시민단체들의 조직 차원에서의 선거참여는 절제되어야 한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지방선거에서 조직적으로 후보를 내고 지방정치에 참여하여 '생활정치'를 바꾸겠다는 충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수년 전 당시 대표적인 시민단체의 주요 간부가 정치권 진입을 시도하면서 그 시민단체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크게 상실되고 위기를 맞았던 일을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비록 일부 시민운동가들이 당선이 되어 지방정부를 맡거나 지방의회에 진출하더라도 여러 가지 문제들이 뒤따른다. 대표적으로 시민단체의 도덕성과 책임성이 다시 문제가 될 것이다. 시민단체를 '비정부기구'(NGO)로 부르는 것도 정부와 일정한 거리에서 견제함으로써 시민의 이익을 옹호해야 한다는 기본 개념을 되새겨보아야 한다. 기존 시민단체들이 오랜 기간 피땀으로 쌓아올린 열매를 일부 시민단체들이 지방선거를 통해 취함으로써 풀뿌리 민주주의의 요람인 지방 시민단체의 뿌리를 고사시키는 일만은 없어야 하겠다.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로 새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이 정치와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먼저 제자리를 찾고 뿌리를 바로 내려야 한다. 그런 이후에 선거공영제에 의한 지방선거로 깨끗하고 참신한 지방정부가 출범해야 한다. 부패의 고리로부터 자유로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지방정부를 맡게 될 때 지방자치는 제3기를 맞아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자리를 잡고 선거공영제를 통해 지방선거를 바로 세울 때, 성숙한 민주주의도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金錫俊 (이화여대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세계일보 2002. 5. 15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