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식 대통령제로 가자면 - 김민전
	2003-08-29
미국식 대통령제로 가자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식 대통령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미국식과 프랑스식 대통령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결론부터 말하면 프랑스식과 미국식 어느 것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으며, 두 제도는 상이한 헌정원리에 기반하고 있고, 또 성공적 운영을 위한 조건 역시 상이하다. 우리나라에서 분권형 대통령제로 알려진 프랑스식 대통령제는 정당책임제를 근본으로 하고 있다. 프랑스는 행정부의 요구가 있을 때 법안에 대한 조문별 심사 없이 찬반투표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미국식 삼권분립론자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의회의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있다. 반면 대통령의 인사권이나 행정권 역시 미국과 같이 견제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드골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대통령 소속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면 대통령은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다. 대신 대통령이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하면 의회 다수당에 내각 조각권과 행정권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당과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는 미국식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의 다수당, 그 어디에서도 권한과 책임을 몰아주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미국은 대통령이 행사하는 거의 모든 인사권을 의회의 인준을 받게 하는 등 의회와 대통령은 서로 견제하도록 하고 있다. 또 정당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후보를 비롯한 모든 공직 후보의 공천권을 사실상 유권자에게 개방하는 방식으로 정당의 기율을 약화시키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사당적 구조와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염증 때문에 요즘 적지 않은 국민이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하는 미국식 대통령제에 매력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인사청문회 제도의 확대와 국민경선 제도의 도입 등은 이미 우리 정치체제가 미국식 대통령제로 상당히 움직여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미국식 대통령제는 의회와 대통령 간에 권력을 분산해 놓을 뿐 아니라 당정이 분리되고 정당도 분권화되어 있는 정치체제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런 제도가 도입되면서도 국정이 마비되는 것과 같은 폐단이 나타나지 않고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와 설득에 바탕을 둔 통합적이며 전략적인 대통령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의회의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의회와의 불화로 어려움을 겪었던 카터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미국식 대통령제에서는 의회에 대통령을 지지해줄 고정적인 지지기반이 없기 때문에 각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성향은 어떠한지 수시로 점검하고 의원들을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백악관은 공식적으로 입법안을 제안하거나 공직 후보를 지명하기 이전에 여야를 떠나 의원들과 미리 상의하고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정책에 대한 입장 선택도 중요하다. 소수당 출신이었지만 무난히 재선에 성공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국민 다수가 원하는 입장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면 정국의 운영은 쉬워진다. 그러나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는 정책적 노선을 선택할 때에는 대통령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 공화당 의회를 맞이한 클린턴이 매주 각 정책에 대한 국민의 입장을 여론조사하고 자신의 입장을 조율하였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또한 높은 지지도를 바탕으로 의회의 소수파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던 레이건 대통령의 예에서 보듯 국민의 지지도가 매우 중요하다. 다음 선거를 의식하는 의원들은 지지도가 높은 대통령에 대해서는 반대나 비판을 하기 어렵지만, 지지도가 낮은 대통령에 대해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비난함으로써 유권자의 표를 얻고자 한다. 아울러 의회 선거결과에 상관없이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하는 미국식 모델로 가자면, 인준 청문회 대상의 대폭적인 확대, 의회의 정책능력 강화와 같은 권력과 책임의 공유를 위한 방안도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회 선거결과를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로 보고 선거 결과에 따라서 권한을 대폭 축소하자는 프랑스식 대통령제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것이다. 김민전 (경희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여성포럼 정책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3. 8.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