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일하는 정부가 돼라 - 김일영
	2003-08-26
말보다 일하는 정부가 돼라 지난 6개월 동안의 노무현 정부는 한마디로 NATO(No Action Talk Only), 즉 '일은 않고 말만 많은' 정부였다. 본시 출범 초기는 장밋빛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는 때이니 말이 앞설 수도 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여전히 말만 있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다. 더구나 그 말조차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현재 노무현 정부는 다양한 도전과 선택에 직면해 있다.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경제 살리기도 그 못지않게 절박하다. 사회적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하지만 그 와중에 갈등의 표출은 최소화해야 한다. 북핵 문제를 풀고 남북화해를 추진해야 하지만 미국과의 동맹도 유지해야 하고 남남갈등을 완화해야 한다. 정치개혁을 해야 하지만 내년 총선 승리도 놓칠 수 없다. 이런 도전에 대응하는 노무현 정부의 성적표는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다. 경제는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고, 온갖 이해갈등이 충돌하고 있다. 신당은 오리무중이고, 북핵은 여전히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30~40%선에 그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가 이 모든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盧대통령이나 주변 인물들은 이러한 채점 결과를 가혹하게 여길 수 있다. 특히 위에 나열된 문제들 중 일부가 하루아침에, 우리 힘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 점에서 국민이나 언론도 무조건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내려온 구조적 문제와 현안을, 국제공조가 필요한 문제와 내부문제를 구분해 평가하는 자세를 지닐 필요가 있다. 그렇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전체 평점이 좋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 주된 이유는 盧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아직 분명한 인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대통령은 결단을 내리고 선택을 하는 고독한 자리인데도, 盧대통령은 여전히 좌고우면(左顧右眄)만 하고 있다. 이해가 충돌하는 세상에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정치나 정책은 없다. 지도자에게는 상충된 이해 속에서 선택을 하는 결단이 요구된다. 비록 그 결단이 시류에 부합하지 않아 당시에는 고독할지라도 시간이 보상해 주리라고 믿는 신념이 지도자에게는 필요하다. 지도자의 선택은 많은 경우 하나를 택하고 다른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기보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국력을 배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盧대통령은 아직 이러한 선택과 집중에 익숙지 않은 것 같다. 초기에는 동북아 경제중심지 건설과 지역균형발전 같은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과제들이 제시되더니 어느덧 '2만달러 시대'가 추가됐다. 이 중 어느 것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인지도 모호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고 있다. 대통령은 책임을 지는 자리이지 전가하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은 자기 책임하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그에 따른 비용 치르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盧대통령은 여전히 비용지불을 피하려는 것 같고, 책임지기보다 돌리기에 익숙한 것 같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리고 언론과의 '전쟁'을 불사하는 것도 이 탓이 아닌가 싶다. 물론 盧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에게서 기존의 관습과 제도의 벽을 뛰어넘는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수 국민은 盧대통령이 우선 북핵 문제 해결과 경제 살리기에 나설 것을 바라고 있다. 어떤 문제도 생존과 빵에 앞설 수 없다는 게 그들이 삶에서 얻은 경험적 결론이다. 이 점에서 盧대통령은 슘페터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남은 임기 동안 지지자들의 타파 욕구와 일반 국민의 생산 요구를 조화시키는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해주기 바란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행동이다. NATO 정부보다 묵묵히 일하는 정부를 국민은 보고 싶기 때문이다. 金一榮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중앙일보 2003. 8.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