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파업시대 정부가 책임져야 - 함인희
	2003-08-12
출산파업시대 정부가 책임져야 "자녀 많으면 가난해진다" …사교육비 절감 등 대책시급 불과 10여년 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표어가 나오자 당시 대학가에선 ‘가족 계획은 이웃과 상의해 두 집 건너 하나씩’이란 조크로 응수했다. 이제 ‘출산 파업’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당시의 조크는 유머를 넘어 한국사회에 경고가 되고 있는 듯하다. 작년 우리나라의 15~49세 가임여성 1인당 출산율은 1.17명으로 유럽의 이름난 저(低) 출산국가들을 보기 좋게 경신하는 기록을 세웠다. 출산율 감소가 세계적 대세임을 감안한다 해도 우리의 격감 속도는 인구학자들조차 수수께끼라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출산은 가족 차원에서 보면 자녀양육 및 교육과 관련된 과업이요, 국가 차원에서 보면 인력수급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덕분에 과도한 인구 증가는 경제 성장의 압력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논리 때문에 늘 통제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때문에 우리의 가족계획 정책은 남아선호 사상에 따른 ‘성비(性比) 불균형’의 대가를 치르면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 국가적 노력을 무색케 한 출산율 감소의 사실상 숨은 공신은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였다. 노동력의 근간으로서 다복(多福)의 상징이었던 자녀가 값비싼 소비재적 성격을 띠게 되면서, 자녀가 많으면 가난해진다는 충고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현실이 된 것이다. 더욱이 든든한 노후 보장책이었던 자녀는 온데 간데 없고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요, 자녀로부터 버림받은 첫 세대’가 등장한 상황이고 보니, 결국 자녀는 키우는 동안 너무 힘들고 키워 봐야 돌아오는 것 없는 애물단지가 되고 만 것이다. 실제 70대 여성의 경우는 6명의 자녀를 위해 약 40년을 소비한 반면, 50대 여성은 4명의 자녀를 위해 36년을, 그리고 30~40대는 2명의 자녀를 위해 28년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녀의 절대수는 감소해도 자녀 한 명에게 투자하는 시간과 에너지는 오히려 증가하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GNP(국민총생산) 대비 사교육비 지출률이 세계 1·2위를 다투는 현실이 자녀의 효용가치 감소를 부채질했음은 물론이다. 현재 한국에선 가임기에 새롭게 편입되는 여성들의 출산기피 및 연기(延期) 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듯하다. 이들 20대 중·후반의 여성들은 결혼과 경력, 그리고 출산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기에 생애 주기상 ‘과부하’에 걸리게 마련이다. 서구에서는 이들을 위해 공보육 개념을 도입하고, 가족친화적 정책을 마련하며, 아버지의 양육권 확대 등을 시도함으로써 일정한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출산율 감소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결혼도 출산도 하나의 선택(by choice)으로 인식하는 층이 늘고 있으며, 이혼 및 재혼의 증가와 더불어 자녀를 부담으로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늘고 있어, 출산장려 정책만으로는 불충분하리라는 생각이다. ‘일 우선 이데올로기’가 가족의 희생을 당연시하는 한, 저비용·고효율의 사교육비 부담이 계속되는 한, 여성의 출산 파업은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출산 전반에 우호적인 사회환경과 건강한 양육 및 교육을 담보하는 사회 시스템 구축에 중지를 모아야 할 것이다. 희망컨대 더 늦기 전에 인구 감소 및 과소 사회를 위한 준비 또한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고령화와 더불어 진행되고 있는 출산율 감소는 우리의 일상을 향해 패러다임의 혁명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 시민회의 여성포럼 정책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3. 8. 1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