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안이한 통일부 ‘신뢰 프로세스’ - 유호열
	2013-04-01
너무 안이한 통일부 ‘신뢰 프로세스’ 통일부가 2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2013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이날 통일부의 첫 업무보고는 그러나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기반 구축’을 위한 업무계획이라는 제목 아래 대선 공약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그대로 반복 나열함으로써 현실의 엄중함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 국민과 국제사회의 불안과 우려를 불식시키고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확신과 기대를 제공하는 데는 미흡했다. 통일부는 ‘신뢰 프로세스를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5개 중점 추진 과제를 통해 이행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문제의 핵심인 남북관계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 얼마나 꼬일대로 꼬이고 위험천만한 비상시국인지에 대한 냉정한 진단이 없다. 비교적 안정적 시기였던 대선 국면에서 제기했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프레임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달라진 한반도 현실을 담아낼 수가 없음에도 이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 부족과 과거 경험과 교훈을 무시한, 너무도 안이한 자세다. 김정은 정권이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북핵 문제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 이 엄혹한 시기에 이에 대한 치열하고 심각한 문제 의식이 없으니 국민은 업무 추진계획을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인데 우리들의 오해나 불신, 또는 전임 이명박 정부의 대북 압박 정책으로 인해 지금과 같은 갈등과 경색 국면이 조성됐다는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북한이 대한민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기만적으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온 것이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의 핵심인데도, 이를 정면으로,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데 집중하지 않고 있다. 대북 지원과 교류, 당국 간 대화와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선결 과제로 설정한 반면, 핵심 중의 핵심 과제인 북핵 문제의 해결은 우선순위에서도 한참 밀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수준이다. 유엔 안보리가 잇달아 대북 제재 결의를 했음에도 이를 구체화하고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에 통일부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다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지난해 12월 12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를 발사했고, 올 2월 12일에는 3차 핵실험까지 강행했다. 미사일과 핵실험을 통해 체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여건을 확보했다고 확신한 북한은 그 여세를 몰아 내부적으로는 김정은의 유일적 지도력을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한반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행보를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60년 간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해온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고,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를 규정해온 남북기본합의서의 불가침조항 및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전면 배격함으로써 한반도는 사실상 전쟁상태로 전환됐다. 북한은 연례적인 한·미 연합방위훈련을 핑계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핵 선제타격을 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남북 간 전면전을 통해 공산화 통일을 달성하겠다고 공공연히 협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를 단지 언술 차원의 위협이나 협상을 위한 수순 정도로만 간주함으로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또다시 남북관계 해법으로 전면에 내세운 것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조치로서 재고돼야 한다. 대북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할 때 북한의 무모한 도발 의지를 봉쇄하고 국제사회와의 안정적인 공조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정부는 막연하고 애매한 미래 정책 구상보다는 현실 문제 해결에 적합한 대책들을 속속 제시함으로써 답답해하고 불안해하는 국민의 마음을 속 시원하게 풀어줘야 할 것이다. 유호열 (고려대 인문대 교수·북한학 / 바른사회 공동대표) 출처 - 문화일보 2013. 3. 29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3290103393719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