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과 화장실 선진화 - 신일철
	2002-05-11
월드컵과 화장실 선진화 "월드컵 준비는 끝났다"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준비 완료의 기준은 무엇인가. 축구경기장 시설과 보안훈련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온 세계의 손님을 맞을 준비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준비가 화장실 시설과 그 문화라고 강조해두고 싶다. 예부터 우리에게는 화장실에 돈과 공을 들여야 한다는 화장실문화가 빈곤했다. 6.25전쟁때 미국은 공산군보다 무서운 '적'과 대면해야 했던, 대단히 특이한 종류의 전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페렌버그는 한국전쟁사를 다룬 '이런 종류의 전쟁'(This Kind of War)'이란 책에서 미군은 야산에서 포복하면 가슴에 물컹함을 느끼는데 이런 종류의 적이 제일 겁나는 대상이라고 했다. 1950년대의 한국을 보고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이 난망이라 했다. 그 기자는 전란 후 서울 등 한국의 거리에서 받은 이미지가 청소관념 없는 쓰레기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근래의 시민운동 중 가장 시민정신의 큰 뜻이 잘 나타난 것은 화장실 개선 시민운동이다. 서울 등 주요 도시의 화장실 수준이 바로 가장 훌륭한 민간외교의 간판이기 때문이다. 도쿄올림픽 직후 일본에 가 보았다. 일본에서는 외국손님을 맞기 위해 눈에 띄는 두가지를 정착시켰다. 그 중 하나는 모든 상점에서 돈 받을 때 "얼마 받았다", 거스름돈 내줄 때 다시 '거스름돈 얼마입니다"라는 언어 에티켓을 어김없이 이행하고 있었다. 외국인은 낯선 여행국의 돈에 어두워 불안해하는 심리를 헤아린 일본의 글로벌 티켓이었다. 또 하나는 화장실 개수, 특히 야외 어디서나 서서 일을 보는 '입소변(立小便)'의 금지였다. 시골길을 지나가던 버스도 아무데나 세워 놓고 대자연 속에서 '해우(解憂)'하는 쾌감의 기회를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대신 곳곳에 간이화장실을 많이 만들었다. 개방 직후 베이징 근교의 만리장성 관광에 나섰다. 마오쩌둥 시대에는 이런 세계 최고 문화유산을 쓰레기장같이 방임했다. 거기서도 '해우'할 곳을 찾으려 하니 동행했던 조선족 교수가 잔돈을 주며 무료 대중변소는 한사코 못가게 하고 유료 화장실로 안내했다. 그후 호기심으로 대중변소를 가보았다. 역시 장화라도 신지 않고는 들어갈 곳이 못 되었다. 그러나 그런 대중변소를 보여주면서도 덩샤오핑의 대담한 개혁-개방 단안에는 찬사를 보냈다. 그런 용단으로 3년 후 관광으로 번 돈으로 만리장성 지대는 깨끗한 관광지로 개장되었다. 탈북인사를 만나 북한의 화장실문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한국에 와서 가장 행복한 것은 하얗고 깨끗한 화장지 사용이라 했다. 북한에서는 저질의 용지인 '위생지'가 한두해 배급된 적은 있었으나 신문지조차도 없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신문에는 '영도자의 사진'과 '말씀'이 있어 화장지로 썼다가는 큰코 다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노동신문도 한 마을이나 큰 서민아파트 등에 한 부 배달되고 그것으로 독보회를 한 다음 동리 노인들이 마라초(북한어.궐련)용으로 찢어 나눈다는 것이다. 그러면 평양 등 양반 사는 도시 이외의 지방에서는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는 상상에 맡긴다고 했다. 남북한 비교의 지표는 경제격차보다는 화장실문화의 수준이다. 우리 한국도 1만달러의 선진국 문턱에서 뒷걸음질쳤다. 우리도 선진국이 되려면 화장실문화의 선진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은 세계 일류급이다. 그러나 아직 청결수준이 낮은 도심 상가나 음식점 등의 화장실은 꾸준히 개선해 나가고, 잠긴 화장실은 행인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토록 적극 유도해야 할 것이다. 申一澈 (고려대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세계일보 2002. 5. 11 세상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