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이 만능인가 - 김정호
	2003-07-29
'집단소송'이 만능인가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안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면서 이 제도의 시행 가능성이 커졌다. 집단소송이란 피해자 중의 한명 또는 몇명이 재판을 해서 판결을 받으면,재판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들도 똑같은 재판의 결과를 적용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본래 미국의 것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캐나다 호주도 뒤를 따랐다.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재판에 참가한 피해자에게만 재판의 결과가 미친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허위공시,분식회계,주가조작 등으로 피해를 입은 증권투자자들에게 집단소송절차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 제도가 시행된다면 한국은 대륙법 국가 중에서 미국식 집단소송제를 택하는 최초의 나라가 될 것이다. 손해배상이라는 피해자 구제제도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사실 집단소송제도의 실질적 효과는 피해자 구제보다는 가해자의 위법행위 억제에 있다. 막대한 변호사 비용을 빼고 난 후에 개별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배상금은 몇만원 또는 몇십만원 정도의 소액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법원에 왔다갔다하는 것이 귀찮아서 승소하더라도 피해자들이 아예 배상금의 수령을 포기하는 경우조차 많다.하지만 피해자의 숫자는 많기 때문에 가해자는 엄청난 배상금을 부담해야 하고, 그것이 경영자나 회계법인으로 하여금 허위공시나 분식회계,주가조작 등 불법행위를 두려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집단소송이 불법행위 억제수단으로서 가장 적합한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증권관련 집단소송이 제기되려면 허위공시,분식회계,주가조작 등 불법행위의 구체적 내용이 밝혀져야 한다. 누가 어떤 내용의 분식회계,허위공시,주가조작 등을 했는지가 밝혀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집단소송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불법행위 사실을 밝힐 수 있는 능력은 강제적인 조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 즉 금감원이나 증권거래소 같은 기관만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증권관련 집단소송은 그런 기관들에 의해 밝혀지고 이미 처벌이 이루어진 사건들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손해배상액 산정방식 또한 문제다. 집단소송에서의 손해배상액 산정방식은 기존의 증권거래법을 따르게 되어 있는데,증권거래법상의 손해배상액 산정방식이 불합리하게 되어 있다. 경영자의 불법행위가 없더라도 주가는 늘 변하기 마련이며 그 과정에서 투자자는 언제든지 손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허위공시나 분식회계 등으로 인해 투자자가 입은 손해의 구체적 크기는 주가변동액의 일부에 불과한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기존 증권거래법은 일단 불법행위가 적발되기만 하면 불법행위자로 하여금 일반적 주가변동에 의한 손해까지도 모두 배상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것은 손해배상제도보다는 주가보험제도에 더 가깝다. 특히 공시나 회계에서의 불법 여부에 대한 판단이 경영자에게 사악한 동기가 있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관료들의 재량적 판단이나 기술적으로 만들어진 기준을 지켰는지의 여부에 의한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주가보험적 성격은 더욱 두드러진다. 재계가 집단소송보다는 금감원이나 증권거래소의 적발노력 강화가 더 합리적 대안이라고 주장해온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따라서 집단소송제를 도입해야 한다면 이 제도의 주가보험적 성격을 제거하는 데에 초점이 두어져야 한다. 즉 경영자가 자신의 사익을 위해서 투자자를 속인 경우만이 소송의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제안되어 있는 남소방지책들이 그러기에 충분한지 의문이다. 金正浩 (자유기업원 원장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7. 2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