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자금 해법 - 박효종
	2003-07-23
대선자금 해법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자금 여야 공개와 검증을 촉구하고 나섰다. 굿모닝시티라는 암초에 걸린 여당의 정치적 궁경을 타개하려는 전략적 사고가 없지는 않겠지만, 일단 한국의 정치 발전에 일조하려는 대통령의 충정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낡은 정치 핵심은 바로 정치자금의 불투명성에 있고, 이 불투명성의 핵은 대선자금의 불투명성에 있다. 대선자금의 불투명성이란 현행 정치자금법과 선거법에 따르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앙선관위에 그 결과를 보고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절차는 여야를 막론하고 요식행위가 돼버려 선관위 보고는 내팽개친 채 '고해성사'니 '공동고백'이니 하는 제안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은 정치적 희극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정치자금법에 고해성사의 규정은 있는가. 누구도 대선자금의 공개된 내역을 믿는 사람이 없고, 선관위조차 믿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선관위가 의심을 해도 책임있게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하는 총선자금도 아니고 대통령의 대선자금이니 그 자금을 실사하여 불법과 비리가 드러나면 어떻게 하겠는가. 국회의원처럼 당선무효를 선언할 수 있겠는가. 그러다보니 대선자금은 성역이 되어 비리게이트는 꼬리를 물고 터지게 되어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모든 정치자금은 대선자금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랜 동안 계속되다보니 하나의 관행이 되어 돈을 받은 정치권이나 돈을 준 기업이나 죄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오히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음모론이 반복되는 상황이다. 우리의 관심은 이러한 뿌리깊은 낡은 관행이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 대선자금 공개로 일거에 바뀌어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고해성사가 간헐적으로 있었으나 성과가 별로 없었다면, 이번에 이루어지는 여야 공동 고해성사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진실게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또한 고해성사로 불법자금임이 밝혀진다면 그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결국 대선자금 문제는 하나의 이벤트성 해법으로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 해법으로 풀어가야 한다. 시스템적으로 풀어간다는 것은 정치자금법 선거법 정당법 등 정치개혁입법을 통하여 풀어가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고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기상천외한 인위적 해법이 등장한다면 일회성 해프닝에 불과할 따름이다. 대선자금의 문제는 화려하게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실사구시의 방법에 의하여 풀어가야 한다. 사실 정치권이 언제나 대선자금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에 기업에 대하여 분식회계를 하지 말라거나 공직자에게 촌지를 받지 말라고 하는 지시가 위선으로 비쳐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권이 대선자금 문제에 대하여 새삼 관심을 갖고 또 이에 관한 의지를 피력할 수 있는 계기를 접하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대선자금과 같은 난제에 있어 '고르돈의 매듭'을 푸는 것과 같은 해법은 없다. 사실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법이나 규정-제도가 없어서가 아니라 법이나 제도를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지킬 의지도 보이지 않아 사문(死文)화된다는 점이다. 아무리 법으로 정한 대선자금이 비현실적이라고 해도 그나마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실낱같은 노력이 나름대로 수반되었다면 대선자금 공개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비유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법에 대한 존엄성은 없고 항상 비현실성 타령뿐이니 어떻게 낡은 정치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가 나오겠는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에 대한 존경심이지, 새로운 이벤트나 퍼포먼스를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朴孝鍾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7.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