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성장' 과제 - 조희문
	2012-11-22
한국영화의 '지속가능한 성장' 과제 1억 명. 올해 한국영화 누적 관객 숫자다. 영화가 시작된 이래 처음 도달한 영역이자 최고 기록이다. 전 국민이 평균 두 번씩 봐야 가능한 수치다. 외국영화까지 합치면 1억7000만 명에 이르고, 연말에는 1억8000만 명도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영화 통계가 시작된 이후 최대 호황이다. 가난과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며 영화계 스스로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다. 이러한 조짐은 진작부터 나왔다. 올해에만 1000만 관객을 넘긴 영화가 비슷한 시기에 2편이나 나왔고, 500만을 넘어서거나 200만∼300만 수준의 작품도 흔했다. 특정한 영화가 독주하면 다른 영화들이 묻히는 ‘1등 싹쓸이’ 현상도 줄어들었다. 대박 흥행이 다른 영화의 흥행을 부르는 응원군 역할을 하면서 한국영화 보기가 문화적 흐름으로 일상화하는 추세인 것이다. 덕분에 영화인들이 한탄하던 ‘…때문에 안 된다’는 투정도 듣기 어렵다. 제작이나 수입은 누구든 할 수 있고, 검열 같은 통제도 사라진 지 오래다. 모든 극장이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토록 하는 ‘한국영화 의무 상영제’(스크린쿼터)가 하루라도 줄어들면 영화산업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외치던 선동가들조차도 한국영화의 기세가 놀라운 저력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정도다. 한국영화 성장과 약진의 바탕에는 영화인들의 창의적 열정, 고급화한 멀티플렉스로 상징되는 상영 시설의 확산, 유능한 인력의 유입, 기업 자본의 확대 등이 어우러져 있다. 1986년부터 시행된 제작 자유화와 수입 자유화 조치는 오랫 동안 지속되던 통제와 보호의 틀을 걷어내고 영화계를 경쟁 체제로 바꿨다. 일정 규모의 예탁금만 있다면 누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고, 외국 영화를 수입하는 일도 가능하게 됐다. 외국 영화, 특히 그 중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졌다는 미국 영화는 파도처럼 한국의 영화산업을 덮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영화는 경쟁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은 외국 영화사들이 한국의 영화 제작 현황을 더 눈여겨보고, 상영 일정을 조정하는 일이 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다. 그러나 1억(億) 관객 시대가 한국영화의 외형적 호황을 증명하는 것이긴 하지만 속내까지 풍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영화 매출의 주력을 극장 상영으로 채우는 일이 계속되고 있는 데 비해, 부가시장의 비중은 10% 안팎에서 맴돌고 해외 마켓도 빈약하다. 자체적인 제작 역량을 갖춘 중견 영화사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부분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대기업 자본이 주도하는 제작과 유통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람에 중소 규모 영화사들의 독립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태다. 영화를 이념 투쟁의 수단으로 동원하려는 시도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영화는 대중 선전 효과가 크다는 점으로 인해 정치권력이나 운동세력 모두에게 동원된 역사가 길기는 하지만, 최근 우리 영화계에서는 그런 흐름이 유독 강하다. 정치권력이 영화를 동원하는 일은 거의 사라진 반면 운동 수단으로 삼으려는 반대 측의 시도는 완강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50%를 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현상은 관객들이 우리 영화를 선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뒤집어 본다면 다른 나라 영화는 거의 안 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2011년 말 기준, 국내 영화 상영 구성 비율은 한국영화와 미국영화가 95.2%를 차지했고, 중국·유럽·일본 영화 등이 나머지 부분을 겨우 채우고 있는 수준이다. 이같은 현상은 2000년 이후 들어 고착된 상태다. 한국영화의 성장과 발전은 반가운 일이지만 과도한 편중, 다른 문화에 대한 무관심이나 배타적 거부를 드러내는 부분은 불안한 그늘이다. 성장을 이룬 한국영화가 성숙한 품격을 갖출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희문 (인하대 교수·영화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2. 11. 22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1122010731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