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규제와 경기부양의 갈등 - 윤창현
	2012-09-19
은행규제와 경기부양의 갈등 경제정책 수행에 있어서 목표와 수단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경제성장, 물가안정, 수지균형 등은 목표이고 재정확대나 금리인하는 수단이다. 노벨상 수상자 얀 틴베르헌 교수는 목표와 수단의 숫자가 같아야만 복수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는 분석을 했다. 앞의 예처럼 만일 목표보다 수단이 적으면 여러 개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목표와 수단 간에 혹은 목표들끼리 상충이나 갈등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도 흔히 나타난다. 국제금융에서 유명한 명제로 `트리펜 딜레마`가 있다. 기축통화는 신뢰도 얻고 공급도 충분해야 하는데 현실에서 이 두 개의 목표는 상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무역적자를 내야만 기축통화인 달러가 충분히 공급되는데 미국이 지속적으로 적자를 내면 미국 경제에 대한 회의가 커지면서 달러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린다. 그런가하면 `불가능한 삼위일체`라는 명제도 있다. 자유자본이동, 고정환율 그리고 독립적 통화정책이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에는 갈등관계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보장된 상황에서 독립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자본이 유입되면서 환율이 절상되고 결국 환율 안정성이 훼손된다. 환율 안정성 유지를 원한다면 자본유입 통제 정책을 써야 하는데 이는 자유자본이동의 목표를 훼손한다. 최근 금융위기 이후 환율 안정을 중시하는 흐름이 나타나면서 자본유입통제를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불가능한 삼위일체를 구성하는 세 개 중 하나의 목표가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금융산업은 초토화됐다. 금융위기가 실물위기까지 확산되자 각국 정부는 이를 살리기 위해 통화를 풀고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경기부양 정책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재정건전성이 훼손됐고 결국 남유럽 부채위기로까지 위기가 확산됐다. 이 과정에서 금융산업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자 금융규제가 강화되기 시작했다. 금융회사의 경우 과거보다 훨씬 강화된 수준의 자기자본을 쌓을 것을 요구받는 등 자본건전성 제고에 대한 강도 높은 규제가 시행됐다. 바젤2, 바젤3으로 대표되는 정책들은 금융회사가 자기자본을 더 쌓고 대출이나 자금운용을 줄이거나 제한하는 등 심하게 몸을 사리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금융회사의 대출은 점점 신중해져 위험한 쪽으로는 돈이 거의 흘러가지 않게 되었다. 경기회복이 절실한 시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경기둔화를 유도하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통화와 재정정책은 경기부양을 유도하고 있는데 금융규제 강화정책은 경기부양을 힘들게 만드는 갈등구조가 부각되고 있다. 강의 상류 쪽에서 물을 넘치도록 흘려보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댐을 자꾸 높게 쌓다보니 물은 하류로 흘러가지 못한 채 댐에 갇혀 있고 강 하류는 물이 말라버리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수단 사이에 서로 상충관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금융회사들을 혼내고 공격하면서 규제강도를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애정어린 비판을 통해 각종 수단이 적정한 수준으로 조화롭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통화당국 정책당국 감독당국은 물론 일반 국민과 금융회사들 사이에는 이처럼 우호적이면서 상호소통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작금의 상황은 은행 및 금융산업에 대한 햇볕정책을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장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12. 9. 19 기고 <원문>http://news.mk.co.kr/column/view.php?sc=30500001&cm=사설·칼럼메인&year=2012&no=601324&relatedcode=&wonNo=&s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