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安保 공백, 위험수위 넘었다 - 정진영
	2012-08-03
외교安保 공백, 위험수위 넘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지런한 사람이다. 일하기를 좋아한다. 많은 문제의 소소한 구석까지 잘 안다고도 한다. 임기 말에 이르러서도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까지 일에 전념하겠다는 포부를 말하곤 한다. 그러나 권력무상(無常)이다. 요즘 국민의 관심은 대통령과 청와대로부터 한참 멀리 떠나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은 체도 잘 안한다. 가끔 야당이 대선 전략용 트집을 잡을 따름이다. 같은 편일 것 같은 여당마저 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혹시 대통령과 함께 침몰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 한다. 이런 대통령과 청와대가 그래도 비교적 잘할 수 있고, 잘해야만 하는 분야가 있다. 곧, 나라의 안보(安保)와 국가의 이익을 대외적으로 지키는 일이다. 이 대통령이 임기 중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 중의 하나가 아마 국가의 격, 곧 국격(國格)일 것이다. 국내에서 대형 국제회의를 하거나 외국을 방문해 환대를 받을 때면 이 대통령은 빠지지 않고 이 말을 했다. 그런 국격을 지키는 외교안보 분야의 일이야말로 임기 말 증상에 빠진 대통령이 그래도 잘할 수 있는 분야다. 국내의 정치적 대립구도와 이해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외교안보 분야에서마저 임기 말 증상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과의 정보보호협정(協定)을 비밀리에 체결하려다가 혼이 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비서관이 물러나는 선에서 조용해진 듯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고, 청와대와 외교통상부 사이의 책임 공방도 가관이었다. 한·일 양국의 실무선에서는 가서명까지 했었다고 하니 나라 꼴이 참 우습게 됐다. 중국에 114일 간 구금돼 있으면서 전기고문까지 당했다는 김영환 씨 사건에 대한 외교적 대처도 군색하다. 중국 감옥에 갇힌 김 씨를 귀국시키기 위해 중국과의 조용한 외교가 필요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개명천지 대한민국에서 김 씨가 조용히 있을 리 만무하고, 어차피 이 문제는 터져야만 하는 사안이다. 중국에 수감돼 있는 모든 한국인들에 대한 영사면접을 하겠다는 정부 발표는 뒤늦기는 하지만 지금이라도 확실히 이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인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양국 간의 영사협정 체결도 추진해야 한다. 미국과의 미사일 지침 개정을 위한 협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부처 간 불협화음이 들리고 대한민국의 국가이익을 제대로 반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북한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우리 정보 당국의 한심한 정보 능력도 국민의 불안을 자아냈다. 리영호 총참모장의 해임이나 김정은 제1위원장의 부인으로 등장한 인물에 대한 정보 당국의 설명은 추측성 기사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정보 당국은 그 많은 인력과 예산으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 임기 말 증상은 어느 대통령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낮을수록 그 증상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다. 세상사의 당연한 이치다. 더욱이 이 대통령처럼 사소한 일마저 직접 챙기는 스타일의 부지런한 대통령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대통령 눈치나 보고 말 잘 듣는 인사들로 주변이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위임(委任)과 자율(自律)이 아니라 대통령 의중을 알아차리고 따르는 것이 습관화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지금이라도 잘할 수 있는 분야, 잘해야만 하는 분야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외교안보다. 대통령이 이 분야에 뛰어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의 성격상 그렇다는 뜻이다. 외교장관이나 외교안보수석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제 늦었다. 대통령이 직접 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정진영 (경희대 국제대 교수 국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2. 8. 3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8030107393719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