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負債 안 갚도록 부추기는 사회 - 안재욱
	2012-07-03
가계負債 안 갚도록 부추기는 사회 가계부채가 한국경제의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 단순히 911조 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의 규모 때문만이 아니다. 가계부채와 관련된 일련의 정부 정책들 때문이다.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닮아가고 있다. 미국에서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중심에는 도덕적 해이가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 도덕적 해이를 발현시키고 증폭시킨 것은 미국 정부의 주택정책이었다. 1990년 미국 정부는 지역재투자법을 개정해 은행으로 하여금 저소득층에 대한 모기지 대출을 장려하고, 1995년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유동화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해 정부 보증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으로 하여금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구입하도록 했다. 그러자 은행의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폭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통해 많은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 들어가 주택가격이 거대한 거품을 이루다 붕괴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부실화되며 위기를 맞았다. 이러한 과정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미국 연방준비은행의 저금리 정책이었다. 저금리 정책으로 늘어난 과잉 유동성이 지역재투자법의 개정과 정부의 주택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통로를 통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대거 몰렸던 것이다.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 211조 원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가계부채 규모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2007년 630조원까지 늘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도 꾸준히 증가해 올 3월 말 기준 911조 원으로 증가했다. 역대 정권마다 예외 없이 내수 진작, 서민금융 활성화 등의 명목으로 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부채 문제가 제기되면 부채 탕감이나 이자 감면 등의 임시 방편으로 막아온 결과다. 그런데 최근 정부는 1개월 미만의 단기 연체를 반복하는 저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프리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최근에 가계부채 연체율이 높아지자 가계부채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고육책(苦肉策)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것은 안 갚고 버티는 것이 유리하다는 도덕적 해이를 확산시킬 수 있는 위험이 내포돼 있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한국은행이 주택금융공사에 1350억 원을 출자하고, 중소기업에 지원하기 위한 총액한도 대출처럼 은행권에 싼 자금을 주어 저신용·저소득층에 낮은 금리로 대출케 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킬 수 있다. 주택금융공사법상 주택금융공사는 자본금의 최대 50배까지 주택담보부 유동화증권(MBS)을 발행할 수 있게 돼 있다. 주택금융공사는 6조 원 이상 증가한 주택담보부 유동화증권 발행 여력으로 은행의 주택담보부 채권을 더 많이 사들일 수 있게 된다. 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주택금융공사에 팔아넘겨 생긴 유동성으로 대출을 늘림에 따라 가계부채가 더욱 더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최근에 발표한 정책들은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가계와 금융기관들의 도덕적 해이를 증폭시켜 가계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를 유발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금리를 조금씩 올려가며 과도하게 풀린 유동성을 걷어 들이며 가계부채 증가를 억제하는 한편, 재무 건전성이 취약한 가계에 대해서는 현재의 부채조정 제도나 파산제도를 활용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리고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과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규제완화와 감세정책으로 민간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경제성장을 위한 올바른 길이다. 지금 정부가 취한 정책들은 가계부채 문제라는 불씨에 부채질을 하는 격이다. 안재욱 (경희대 정경대 교수 경제학 / 바른사회 운영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12. 7. 3 포럼 <원문>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7030103313719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