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 맞는 노사모델은 - 김태기
	2003-07-08
우리에 맞는 노사모델은 청와대 정책실장이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유럽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노사관계 모델문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했을 때 영미식 노사관계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바 있다. 노사문제뿐 아니라 고용이나 복지문제 등 노동문제를 총체적으로 보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서 노사관계 모델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보이지만 상반된 주장에 국민들은 혼돈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는 두 가지 모형 중에서 어떠한 모형이 맞는가.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먼저 각 국의 노사관계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유럽만 보더라도 독일과 프랑스의 노사관계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 따라서 우리에게 맞는 모형이 아니라 유럽식이나 영미식 모형으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보는 또 다른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맞는 모형을 찾기 위한 화두로서 최근의 혼돈을 정리해 보자. 우리나라는 청년실업 등 고용불안이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고 빈곤근로계층의 확대 등 복지가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재벌기업과 공기업의 노사관계 불안은 지속되고 있다. 또한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사관계안정이 필수적인 과제가 되는 등 문제가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반면 노동문제의 해법을 전문가들마저 도식적으로 보고 있어 이념적 문제마저 안고 있다. 영미는 고용문제에 있어서 시장원리를 최대한 존중하기 때문에 일자리의 소멸뿐 아니라 창출이 활발해 실업률의 기복은 크지만 평균 실업률은 낮다. 유럽은 사용자가 해고 등을 하기 어렵도록 국가가 규제하고 있어 직장에 있는 근로자들은 안정을 누릴 수 있지만 기업의 투자의욕은 낮고 노동시장에 새로 진출하려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작아 노동시장이 폐쇄성을 보이고 있다. 유럽은 세금부담이 크고 복지혜택도 커서 사회는 안정적이지만 개인의 근로의욕과 기업의 투자의욕이 낮아 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진다. 이 문제는 유럽이 영미 노사관계 모형을 가미하는 쪽으로 가게 만들고 있다. 영미는 노사문제를 당사자주의에 따라 해결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경제적 조합주의에 따라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에 주력하고 있다. 정부는 노사가 아니라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을 추진한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안정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정책은 역동적이다. 반면 유럽은 산별교섭이나 노사정간의 사회적 합의에 의존하고 있어 노사관계가 안정적이지만 개별 사업장의 노사가 독자적으로 협약을 체결하기 어려워 환경변화의 수용성이 낮다. 이러한 특징은 영미와 유럽이 처해왔던 환경과 국민의식을 반영한다. 영미와 유럽 모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따르지만 영미는 개인의 선택을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전통이 강하고 유럽은 사회세력들간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강하다. 또한 영미는 주주의 이익을 중시하는 주주자본주의를, 유럽은 종업원 등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해당사자자본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모형은 영미와 유럽의 요소가 섞여 있지만 배경은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영미식으로 갈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노동문제가 유럽식의 부정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노동시장의 폐쇄성은 깊어가고 복지와 경제의 악순환 조짐이 빠른 속도로 대두하고 있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강화하는 노사관계정책을 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은 정치적 조합주의와 경제적 조합주의를 동시에 추구해 노사관계의 안정성과 정책의 역동성이 모두 저하되고 있다. 金兌基 (단국대 노동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경영환경개선운동본부 정책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7.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