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노동 무임금부터 지켜야 - 정갑영
	2003-07-04
무노동 무임금부터 지켜야 올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파업이 가장 많은 나라로 기록되고 있다. 불과 6개월 만에 노사분규가 벌써 320건을 넘어섰고, 아직도 대형 파업사태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노사관계를 경험했던 2000년보다 2배 이상 증가하는 추 세에 있다. 얼마 전 스위스 국제경영연구원(IMD)이 발표한 노사관계의 경쟁력 평가에서도 한국은 30개 조사 대상국 중 최하위를 차지한 바 있다. 새 정부의 친노(親勞) 정책과 어우러져 세계 속의 한국은 또다시 `파업 공화국 `으로 각인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언론에 비치는 전형적인 한국의 근로자상은 더 이상 일터에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드센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21 세기에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겠는가. 이런 여건에서 어떻게 투자를 기대하고, 국민소득 2만달러를 달성하겠는가. 동 북아 중심경제의 꿈도 요원할 따름이다. 이미 외국인 투자는 5월까지 작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4억달러로 급감했다. 물론 파업 여파는 경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법질서 파괴와 혼란으로 야기되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려하는 국민들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정권 초기의 혼란으로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것 같다. 해외투자자를 두렵게 만들고, 국내 기업을 몰아내는 노사문화로는 성장도, 복 지도, 후생도 기대할 수 없다. 글로벌 경쟁에서 생존 기반조차 마련하기 힘들 다. 노사문화의 선진화 없이는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어떤 경제정책도 실현시킬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성숙한 노사관계 정착을 가장 절실한 현안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첫째, 정부의 접근방법부터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섣불리 검증되지 않은 새 로운 노사제도를 실험하려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 은 또 다른 혼란을 불러올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새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법질서와 제도를 제대로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잣대로 노사문제를 다루면 어떻게 질서를 정착시킬 수 있겠는가. 무노동 무임금의 원칙만이라도 제대로 확립된다면 노사관계는 한 차 원 선진화될 수 있을 것이다. 파업이 터질 때마다 불법에 눈감아 주고, 협상원 칙마저 오락가락하고, 처벌 후에 반드시 사면해 주는 온정과 감성의 정치로 어 떻게 큰 질서를 제대로 확립할 수 있겠는가. 행여 정치적 편의주의로 노사문제 를 해결하려고 시도해서는 안될 것이다. 법질서를 유지시키는 것은 정부에 부여된 최소한의 책임이다. 이런 역할마저 외면한다면 누가 그런 정부를 믿고 투자하겠는가. 노사 모두에게 법질서를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일관된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 고, 그 `말`을 끝까지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에 대한 신뢰와 정권에 대한 믿음도 모두 여기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근로자를 탄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친사적(親使的) 발상도 아니 다. 사회적 합의로 도출된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것일 뿐이다. 물론 기 존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면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개선시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 개선도 성숙된 노사문화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져야 사회적 혼란을 피할 수 있다. 둘째, 노사문제를 글로벌 경쟁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 노사관계 선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시키지 않고, 노사 가 참여할 수 있는 영역과 한계도 분명히 설정하지 않고서 어떻게 투자를 유혹 할 수 있겠는가. 노동자의 권익은 다른 각도에서 보호되어야 한다. 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큰 미국의 생산성이 유럽의 생산성보다 높은가. 줄어 드는 빵조각을 놓고 누가 많이 가져가느냐를 씨름하는 제로섬 게임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노조를 보호하는 친노 정책이 실업자를 양산한다면, 그들은 누가 보호해야 하 는가.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6만명이 일자리를 잃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 다. 친노 정책이 일부 대형 노조를 보호할 수 있을지라도 일자리조차 없는 수 많은 근로자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힘 있는 대형 노조 중심의 노동운동 은 우리 사회의 통합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더 늦기 전에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정부의 일관된 정책과 기업의 투 명성 제고가 확보되면 근로자의 시각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숙한 노 사문화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룩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을 공유해야만 한다. 그것은 법치주의와 노사 자율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7. 4 테마진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