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 2만달러의 조건 - 김중수
	2003-07-01
국민소득 2만달러의 조건 최근 들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 대한 논의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정부의 정책 당국자는 물론이고 재벌 총수와 연구계 일각에서도 소득 2만달러를 정책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일견 상투적이며, 과거 권위주의적 시대에 들어봄직한 구호가 지금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 마디로 소득 1만달러의 고비를 넘겨 새로운 도약의 계기로 삼겠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에 소득 1만달러가 달성된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위기로 1998년에 7000달러 이하로 추락했다가 2002년이 되어서야 다시 1만달러 수준으로 회복되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이 가능했던 것은 금리 인하 등 적절한 거시정책 운용과 함께 위기의 진앙지였던 기업·금융부문의 부실이 적기에 공적자금 투입을 통하여 정리되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재벌과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고정 관념이 제거되었으며, 국제 규범에 부합하는 기업 지배구조, 금융감독 제도 개선 및 정리해고 법제화 등으로 대표되는 구조 개혁은 우리 경제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단순히 국제 규범에 맞는 제도가 구비되었다고 해서 소득 2만달러의 달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드웨어적 개혁만으로는 잠재 성장 능력을 함양시키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경제는 물론 교육·사회·정치·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의 제도가 ‘경쟁과 개방’이라는 개념과 일관성을 유지하여 이행됨으로써 글로벌 경제에 부합하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 기계적 계산에 따르면, 소득 2만달러를 2008년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달러 표시 소득이 매년 12% 이상 성장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느냐 못 하느냐 하는 것은 실질성장률, 인플레이션율, 원화 가치 상승률에 달려 있다. 만약 인플레이션율이 오르면 원화의 화폐 가치는 떨어지게 되므로, 달러 표시 소득은 인플레이션율이 오른 만큼 증가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결국 안정적 거시경제 운영 규율을 확립함으로써 경제의 불확실성 축소를 전제로 성장 능력 함양에 역점을 두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뿐이다. 앞으로 5년 동안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5.4%로 추정되고 있다.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존하여 성장하던 개발도상국 발전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이제는 생산성 증가가 성장의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는 선진국형 성장 패턴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이 특징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런데 5.4%의 성장을 달성하려면 생산성이 매년 2% 상승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1990년대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 1.2%보다 높을 뿐 아니라 선진국들도 일반적으로 이룩하지 못했던 높은 수준이다. 생산성 2% 증가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생산적 행위를 장려하는 유인 체계를 제공하는 제도의 질 제고와 함께 대외 개방의 확대 등 사회적 하부 구조가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 질서의 준수, 재산권 보호, 정책의 신뢰성 확보 등이 필수적이다. 동시에, 최근 세계화에 따라 급격히 진전되고 있는 무역 및 투자 자유화 추세에 적극 동참하여야 한다. 특히, 대외 개방은 신기술 및 선진경제의 이른바 ‘베스트 프랙티스(best practice)’ 유입을 촉진시킴으로써 국내 경제 시스템의 효율화를 촉진할 수 있다. 대외 개방에 주저하는 경제가 국내 경쟁 체제를 갖추어 생산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가까우며,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도 ‘경쟁과 개방’의 기본 개념을 훼손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개혁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경쟁과 개방’을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 확립되지 못할 경우 집단 이기주의를 조장하여 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사회 분위기가 파이를 키우는 것보다 파이를 나누는 것에 집착한다면, 집단의 지분을 확대시키려는 지대추구 행위가 횡행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결론적으로 우리의 내부 경제 체제를 시장경제 질서에 부응하도록 구조 개혁 노력을 부단히 기울여야만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경쟁에 살아 남아 선진국으로의 진입이 가능해질 것이다. 김중수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7. 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