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남북협상문화를 - 제성호
	2003-06-27
당당한 남북협상문화를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기간 연장 거부로 지난 25일 70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로써 대북송금 의혹사건 수사는 수많은 화제와 아쉬움을 남긴 채 사실상 종료됐다. 특검팀이 밝혀낸 사실의 핵심은 김대중 정부와 현대그룹이 북측과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하면서 모두 5억달러를 북한에 제공키로 약속했다는 것, 이중 현대측 지급분 4억달러는 대북사업에 대한 선(先)투자적 성격을 가지며 정부 지급분 1억달러는 정책적 차원의 지원금이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전액 정상회담 전에비밀리에송금된이상상호간의연관성을부인할수없다는것등이다. 한마디로 특검팀은 북한에 송금된 돈을 남북정상회담의 대가성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수사 결과는 김대중 정부가 공들여 추진했던 햇볕정책의 순수성과 도덕적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기에 충분하다. 그간 박지원 전 장관 등 햇볕정책의 전도사들이 한결같이 정상회담 대가로 북한에 한푼도 준 일이 없다고 공언했었는데 이러한 말들이 거짓임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한 '돈을 주고 남북정상회담을 산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특검팀이 제한된 일정 가운데서도 청와대의 부당대출 압력을 캐내는 등 상당한 성과를 올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통치행위론을 배척하면서 대북정책도 법치주의의 틀 속에서 추진돼야 한다는 점,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불법적인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법의 기본을 올바로 세우려 한 것은 용기있는 결정이었다고 본다. 반면 특검팀이 법률 적용에서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 대내외 요인을 고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대북송금과 관련해 총 8명을 재판에 회부하면서도 임동원-정몽헌씨는 불구속 기소한 것이나 김 전 대통령이 대북송금을 인지했다는 점을 확인했지만 구체적인 위법행위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사하지 않은 대목은 그 대표적인 예다. 현재 특검팀의 수사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시각과 반응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여당은 햇볕정책의 과오를 반성하기는커녕 대북지원금이 평화비용과 통일비용이라는 등 자기변명에 급급하고, 야당도 추가적인 의혹 제기와 새 특검법안 제출 등 정치공세에 주력하는 양상이다. 이런 와중에 여론의 분열과 남남갈등의 골은 계속 깊어지고 있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국민의 이해를 구하지 않고 북한에 비밀 송금하는 등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특검팀의 간략명료한 지적이다. 아마도 이것이 특검팀이 공소를 제기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가장 중요한 법적 논거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번 특검을 통해 깨달아야 할 교훈은 대북정책은 국민적 합의를 토대로 투명하게 추진해야 하며, 더 이상 민족문제를 정치적 치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거나 끝없는 정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라고 하겠다. 대북송금 특검을 계기로 참여정부는 당당한 남북협상 문화를 만들고 올바른 남북교류협력 질서를 새워야 한다. 이와 관련해 정부가 결코 뒷거래 방식의 남북정상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천명할 필요가 있다. 훼손된 남북간 신뢰는 최대한 회복하되, 종전의 대북 저자세와 북한의 무리한 현찰요구 관행은 반드시 근절토록 해야 한다. 또 특검수사 막바지에 터져 나온 150억원의 정치자금 의혹을 하루빨리 해소하는 한편, 대북정책 추진 방식의 개선과 남남갈등 완화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諸成鎬 (중앙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6. 2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