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구해야 야당이 산다 - 김일영
	2003-06-27
대통령 구해야 야당이 산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자, 한나라당에서는 ‘그런 대통령 밑에서 국민 하기도 어렵다’고 이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에서는 ‘노 대통령 밑에서 야당하기’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숙고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나라 안팎이 무척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나라 전체가 북한의 핵 도박에 볼모로 잡혀있고, 모든 경제지표에는 빨간불이 켜 있으며, 노동쟁의와 범죄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속에서 민주당은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으면서 스스로가 집권당이란 사실을 망각하고 있고, 청와대와 정부는 지지율 하락 속에서 아직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말만 되뇌고 있다. 이런 상황은 야당인 한나라당에는 어쩌면 호기일 수도 있다. 이 기회를 이용해 국민들에게 안정감과 책임감 있는 정당의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대표경선 과정에서 한 주자가 고백했듯이 현정부가 아무리 실수해도 한나라당 지지도는 높아지지 않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분으로 곧 쪼개질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에 대한 지지도가 30% 정도인 반면, 한나라당은 25%에 그치고 있다. 국민들은 불안하고 삶에 고달파하면서도 한나라당에서 의지처를 발견하고 있지는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한나라당이 노 정부하에서 야당하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고, 또 국민들에게 그 점을 인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새 대표는 경선과정에서 ‘보수 혁명’을 기치로 내걸었다. 여기에는 당이 노령화를 극복하고 젊은층에게 다가서기, 진공관 내지는 아날로그 정당을 디지털 정당으로 바꾸기, 폭로정치나 뒷다리잡기 정치에서 탈피해 정책과 비전으로 승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하기 등 많은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 선행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 이 시대의 야당하기가 뜻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현재 한나라당은 두 개의 전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많은 젊은이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당내외의 구(舊)보수세력과 차별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대를 떠맡았다는 잘못된 소명감에 빠져있는 일부 아마추어적 진보세력과 선을 긋는 일이다. 이러한 두 전선에서 노 대통령의 위상은 후자에 감싸여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에서 한나라당이 나아갈 길은 자신들이 탈냉전과 화해의 시대에 여전히 냉전적 사고 속에 살고 있는 수구세력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면서 일부 진보세력이 아마추어리즘 수준에서 국정을 실험대상으로 삼으려는 현실로부터 노 대통령을 구해 중립지대로 데려오는 일이다. 그동안 한나라당은 많은 비판과 폭로를 통해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지는 못했다. 그 이유는 기존의 비판과 폭로가 국민들에게 뒷다리잡기 식의 비판과 무책임한 폭로로 비쳤기 때문이다. 이런 한나라당의 태도는 국민들에게 일시적 위안은 될지 모르지만 영원한 안식처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한나라당은 야당인 이상 정부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 비판은 다른 세력과 차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구세력과 같이 말꼬리나 붙잡고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비판을 하더라도 한나라당은 일부 진보세력으로부터 ‘노무현 대통령 구하기’ 또는 ‘노무현 대통령 중립화하기’의 입장에서 해야 한다. 그래야 한나라당은 구보수가 아닌 신보수라는 소리를 듣고, 무책임한 보수가 아니라 책임있는 보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한나라당의 노 대통령 구하기 식의 비판은 노 대통령을 살리고, 나라도 살리며, 더 나아가 한나라당도 살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한나라당의 새 대표는 강한 리더십을 갖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에게서 이러한 노 대통령 살리기 식의 보수혁명을 기대해 본다. 김일영 (성균관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3. 6. 2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