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라도 法대로 - 김정호
	2003-06-25
지금부터라도 法대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그것은 인간을 비참한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에 국가라는 괴물(Leviathan)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토머스 홉스는 갈파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국가에 폭력 사용권을 몰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부여받은 폭력을 우리는 공권력이라 부른다.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긴 자를 공권력으로 다스리는 것이 국가의 본질인 것이다. 요즈음 우리의 현실을 보면 우리에게 국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불법파업이 벌어져도 공권력은 꿈쩍 않는다. 무슨무슨 연대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부당 공동행위를 해도 공정거래위원회는 눈을 감고 있다. 불법행위에 대해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조건까지 내주고도 정부는 그것을 법과 원칙에 따른 협상이라고 자찬한다. 물론 개인들끼리라면 그럴 수도 있다. 상대방의 잘못을 참아주고 덮어주는 것만큼 훌륭한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국민으로부터 법집행을 위임받은 국가기관이 그래서는 안 된다. 범법행위 앞에서 눈을 감고 있는 것은 관용이 아니라 직무유기다. 법을 사문화시키는 것이다. 법이 무력해지다보니 매일 들리는 것이 파업 소식이다. 기회만 생기면 실력행사를 통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 한다.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한다. 모두가 그러다 보니 파업 천지가 되어 버리고 결국은 모두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모두가 모두를 상대로 파업을 하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황이다. 파업을 하면 얻어지는 것이 있기 때문에 파업들을 한다. 불법 파업을 하면 반드시 손해를 보게 된다는 원칙이 분명히 서야 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법과 원칙은 관철돼야 한다. 물론 정부도 법과 원칙을 부르짖는다. 그러나 늘 말뿐이다. 공권력의 뒷받침 없는 법과 원칙은 공허하다. 불법행위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제재하지 않는 것은 경찰의 직무유기이며, 범법행위 사실을 알고도 기소하지 않는 것은 검찰의 직무유기다. 일시적 폭력에는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는 대통령의 말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일시적이든 조직적이든 폭력은 불법이다. 일시적 폭력을 용납하다 보면 장기적 조직적 폭력이 생겨나지 않겠는가. 대화와 타협도 그렇다.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것도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 법을 어긴 자와의 대화나 타협은 법을 포기하는 일이다. 법을 벗어난 대화와 타협은 우리 사회를 법치 사회가 아니라 폭력 사회로 몰아간다. 대화와 타협을 법 위에 두는 현 정부의 태도가 파업이 만연한 작금의 사태를 초래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이래 가지고는 불황의 늪을 벗어날 수 없다. 길거리에 차가 줄었을 정도로 경기가 나쁘다. 일자리를 만들고 소득을 올리려면 기업들의 왕성한 투자가 필요하다. 불행히도 우리의 현 상황은 오던 투자도 발길을 돌리게 만들 지경이다. 투자는 불확실성을 싫어한다. 언제 파업이 벌어져 생산과 영업이 중단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는 투자를 기대하기 힘들다. 투자를 촉진하려면 법치의 확립을 통해서 우리 경제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외국 자본들에게 우리나라는 그리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다. 규제가 많고, 외국인들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으며, 영어도 시원찮다. 거기다가 파업까지 빈발한다면 외국 자본은 다른 나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지금도 10여건의 외국인 투자가 노조 파업 때문에 지연되고 있다고 한다. 토종 기업들도 그리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한국의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 다른 나라로 떠난 기업들이 이미 상당수에 달한다. 파업하기 좋은 나라가 될수록 한국을 탈출하려는 토종 자본의 숫자는 늘 것이다. 자본의 탈출 문제는 공장이나 시설을 강제로 잡아 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기술 발전의 주기가 짧아졌기 때문에 신규 투자를 하지 않을 경우 기존 공장과 시설은 곧 고철 덩어리 신세가 되어 버린다. 새로운 투자 없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글로벌 경제의 특성이다. 그런데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법은 무너졌고, 정부는 법대로 집행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자본의 탈출이 뻔히 내다 보이는데도 대책이 없다. 지금이라도 법대로 해야 한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6. 2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