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을 우습게 보지 말라 - 김태기
	2011-11-10
기업을 우습게 보지 말라 지난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한 노사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주제로 서울시노사정모델협의회가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노사의 사회적 책임은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회공헌 활동에 치우쳐 있는 반면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 시정이나 하청업체나 사내 하도급업체와의 공정거래 관행 확립 문제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는 우리나라 일자리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원인을 다시 확인시켜 줬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고용 안정과 임금 수준 등에서 격차를 줄여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공정 노동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 노사가 불공정한 거래나 고용관행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미미해 결국 중소기업과 비정규직과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판 사회적 책임 모형’을 고민하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이 기업에서 돈을 받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투자기금 설립을 추진하겠다는 소식은 뜻밖으로 들렸다. 서울시장이 일자리 문제 해결에 팔을 걷고 나서는 것은 반갑지만 기업의 출연을 받아 해결하겠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감이 있다. 상식이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많은 사람의 기대를 받고 있는 박 시장이 추진하는 것이기에 더욱 어색하다. 사회투자기금을 만들어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은 사회투자라는 이름만 없다면 예전부터 하던 기금에서 지원하는 고용사업이고 사회투자가 기업의 자금 출연을 의미한다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에 떠넘기는 오랜 악습의 되풀이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뿐 아니라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도 책임지고 나서야 한다. 특히 방대한 예산과 권한을 가진 서울시의 운영권한을 가진 시장으로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많다. 정부나 지자체는 재정 지원을 하거나 규제를 함으로써 정책을 추진한다. 이것은 정부나 지자체의 고유 권한이다. 시장으로서 그 권한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시정을 바라보는 일반사람들의 상식이다. 박 시장은 먼저 서울시가 자체적인 사업으로 고용을 늘릴 수 있는지부터 찾아야 할 것이다. 또한 서울시가 지금까지 추진해 왔던 각종 일자리 문제 해결 지원사업이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박 시장이 일자리 문제 해결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서울시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꿔 지원 규모를 늘리는 일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의 입김이 세다. 정부가 기업에 협조하라고 요청하면 ‘보험료’ 내는 심정으로 응한다. 이것이 일반사람의 상식이다. 박 시장이 사회투자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시절 잘나가는 기업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기업에 서울시장은 권력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서울시장에게 잘못 보이면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을 경계하지 않으면 기업을 우습게 보는 정부의 권위적인 행태를 서울시가 확산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구태여 기업에 손을 벌리고 행여나 문제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부담을 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기업이 일자리 문제 해결에 동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모범적인 기업에 대해서는 세제나 자금 지원 혜택을 줄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차별을 하는 기업이나 협력업체와 불공정한 거래를 하는 기업은 서울시 사업에 입찰하는 데 불이익을 주거나 심한 경우 입찰할 수 없도록 만들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정 고용관행 확립을 위한 노사의 사회적 책임을 확산시킬 수 있다. 상식은 돌출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되돌아보는 지혜에서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 / 바른사회 회원) 출처 - 중앙일보 2011. 11. 10 시론 <원문>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628819&ctg=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