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파업 고리 끊으려면 - 박효종
	2003-06-20
줄파업 고리 끊으려면 예고된 파업가운데 하나였지만 조흥은행노조가 정부의 전면매각방침에 반발하며 때이른 파업에 들어갔다. 최근 갖가지 극단적인 집단행동을 하도 봐서 그런지 특별한 충격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은행의 파업은 병원의 파업만큼이나 선의의 일반 시민들에게 고통스러운 사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이 파업의 끝이 어떻게 될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번 파업사태를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집단행동이나 파업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적인 시장사회에 살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파업은 권리로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파업은 최후의 극단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일정한 법테두리와 상식적인 규범안에서 이루어져야지,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사생결단으로 할 수는 없다. 전쟁만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금도는 있는 법이다. 적이라고 하더라도 교섭을 하러온 대표를 죽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파업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집단행동에 도덕적 명분이 있고 자신들의 요구가 절박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는 강박감에 사로잡힌 듯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기상천외한 투쟁방안을 강구하기에 이르렀다. "내일이면 세상이 종말이 온다"는 식의 자해행위가 그것이다. 항의표시로 머리를 깎고 단식을 하는 것은 기본일 뿐, 자신의 삶의 터전에 대한 치명적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은행의 생명은 신뢰며 공신력에 있는 것인데, 전산망을 파괴하겠다는 발상은 천민파업문화 이외에 다름이 아니다. 그런 식의 투쟁을 해서 설사 전면매각을 막는다고 해도 고객의 신뢰를 잃고 돈이 다 빠져나간 은행이 어떻게 살아남고 번영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인가. 막대한 공적 자금이 들어간 은행에서 고용승계에 관한 선처요구라면 또 모를까, 매각을 결사 반대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사태를 이렇게 꼬이게 한데 대한 일정한 귀책사유는 정부에 있다. 이미 줄줄이 예고되어 있는 파업과 집단행동에서 정부가 원인제공자가 된 이유라면 자명하다. 이제까지의 집단행동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결단'이 친노동자적 성향에서 나온 것은 틀림없지만, 문제는 정치적 편의주의에 의하여 법과 원칙도 훼손하고 경제적 효율성도 저해한다는 점이다. 또 친노동자적 성향도 골고루 발휘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한국노총의 불만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현정부가 표방한 국정운영 슬로건 가운데는 '법과 원칙'도 있는가 하면 '대화와 타협'도 있다. 국정운영에서 양자는 모두 필요한 것이고 특히 민주사회에서 양자는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사용해야 할 곳에 '대화와 타협'만을 고집하면 채찍을 사용해야 할 때 당근을 사용하는 '어리석은 마부'처럼, '어리석은 정부'가 아닐 수 없다. 무분별한 당근이 말을 길들이기보다 버릇없는 말로 만드는 것처럼, 무분별한 타협이 집단행동의 악순환을 가져왔고 파업의 기대치를 높였다. 더욱이 가장 나쁜 것은 누구든지 '쎄게' 나가면 정부가 법과 원칙을 접고 굴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시켰다는 점이다. 이번 조흥은행사태에서 정부는 법과 원칙에 의한 처신을 함으로써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안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만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앞으로 예고되어 있는 줄파업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될 것이다. 朴孝鍾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세계일보 2003. 6. 20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