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떼~한민국`인가 - 류동길
	2003-06-02
이 나라는 `떼~한민국`인가 재계 3위 SK그룹이 해체 위기에 몰렸다. 금융권과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파장과 악영향이 걱정이다. 올 1분기 성장률은 3.7%, 2분기에는 더 낮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상수지는 적자 행진을 계속하고 있다. 풀린 돈은 땅으로 아파트로 몰려다니는데 경제 당국은 부동산 거품이 꺼지리라는 희망가(希望歌)를 부르는 게 고작이다. 경제는 멍들고 있는데 경제를 챙기려는 당국자도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국정에 전념해도 시간이 모자랄 대통령이 일련의 의혹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 딱한 모습도 본다.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고 답답하다. 불안하고 답답한 사례는 많다. 첫째,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을 둘러싼 교단 갈등과 교육행정의 난맥상이다. 윤덕홍 교육부총리는 취임후 NEIS를 중단한다고 했다가 “시행 쪽으로 가야 한다”(5월 19일 국회 답변), “기존의 학교종합정보관리시스템(CS)으로 돌아가기 어렵다”(23일 기자간담회)고 했다. 대통령도 전교조의 강경 투쟁에 엄정 대처하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난국 타개 때는 정치적 결단이 중요하다”(26일 기자회견)며 NEIS 시행을 전면 재검토키로 방향을 돌렸다. 장관이 결정한 일을 교육부 공무원들과 전국 시·도 교육감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그러자 “NEIS 체제는 잠시 중단한 것”(28일 MBC 라디오 인터뷰) “6개월간 재검토, NEIS체제로 갈 것”(29일 국회 교육위원회 답변)이라고 또 말을 바꾸었다. 제도에 문제가 있다면 시행을 안할 수도 있고, 수정할 수도 있다. 불안하고 답답한 것은 국가의 주요 정책이 힘에 밀려 방향을 선회했다는 점이다. 이게 정치적 결단이란 말인가. 둘째, 정부 각료들의 엇갈리는 행태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방조제 공사가 마무리돼 가고 있고, 이미 1조4000여억원이 투입된 국가적 사업이다. 환경보호론자들과 일부의 반대가 있지만 정부는 계획대로 추진한다는 방침을 확인하고 농림장관은 이를 다시 강조한다. 그런데 환경장관과 해양수산장관은 반대 시위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인다.어느 정부의 각료들인가. 개인적인 견해가 그렇다면 장관직을 내놓고 반대 시위를 하는 게 옳다. 그렇지 않다면 국무회의에서 결판을 내야 한다. 새만금사업의 추진이 옳고 그른지를 여기서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런 일은 또 있다. 30일 연세대에서 열리는 한총련 11기 출범식과 관련해 경찰은 원천봉쇄 방침을 세웠고, 김두관 행자부장관은 허용 방침을 밝히고 있다. 국민은 정부의 어느 곳 말을 믿고 따라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셋째, 힘으로 밀어붙이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철도분규, 물류대란에서 보듯 정부는 말로만 ‘강경대처’ ‘원칙처리’를 외치면서 집단 행동에 백기를 들었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물류대란과 관련한 언급에서 “틀린 주장이 아닌데 불법행동을 엄단하기만 하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불법행동이라도 정당한 주장은 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주장의 정당성을 누가 판단하는가. 장관이 하는가, 당사자들이 하는가. 목적이 정당하면 과정과 절차가 잘못돼도 괜찮다는 논리가 아닌가. ‘집단으로 밀어붙이면 무언가 얻어낼 수 있다’는 인식을 정부스스로가 심어주고 있다. ‘육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이 실감난다. 떼쓰면 통한다고 해서 한국을 ‘떼’한민국이라고 부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인들 이기주의가 없었던 적이 있는가. 이기주의 그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집단이든 지역이든 이기주의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어긋날 때 법과 원칙이 중요한 잣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의 원칙은 지키되, 원칙의 타협은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부는 혹시 지지 기반의 상실을 우려해서 집단행동에 밀리고 있는 건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그건 큰 착각이다. 지지층이란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란 말은 있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 또는 정당에 대한 지지는 그들이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 외교 모습을 보고 반대자들이 지지자로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과거 누구를 잘못 찍어 잘라버린 손가락이 몇 트럭이나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 않았던가. 정부는 이른 바 ‘코드’병에서 벗어나야 한다. 코드가 맞는 사람들끼리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가. 코드는 전국민에게 맞추어야 할 일이다. 구두 제조업자는 고객의 발에 맞는 구두를 만든다. 정부는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큰 원칙부터 세우라. 류동길 (숭실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5. 31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