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政난맥 풀려면 - 사공일
	2003-05-26
國政난맥 풀려면 정말 나라가 어지럽고 혼란스럽다. 각종 이익집단들은 눈앞의 제 몫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 법과 질서, 그리고 각종 사회규범을 파괴하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고 있다. 더욱이 목소리 큰 무리가 불법과 탈법적인 방법으로 더 큰 이득을 챙기는것이 용납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올바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하지 못한다면 과거의‘영국병’이나 ‘남미병’, 혹은 오늘날의‘독일병’과 유사한‘한국병’에 걸려 앞으로 상당기간 국가 발전이 멈추거나 뒷걸음치게 될 것이 분명한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물론 우리 국민 모두가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고 위기극복에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과 함께 심각한 국정난맥부터 풀어나가기 위한 정부차원의 노력이 더욱 시급하다. 우선 국정운영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행정제도를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 비서실과 각 정부 부처 및 관료 체제의 유기적 협력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행정체제를 마련하고 경험과 전문성, 그리고 팀워크가 중시되는 원칙의 인사가 이룩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도 국정운영 리더십의 제도화를 통해 달라져야 한다. 급변하는 국내외 여건 속에서 새로이 대두되는 모든 주요 국사를 실무수준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이 직접 간여하고 챙기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전문성 면에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현재 우리는 강력한 대통령 책임제를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 비서실의 올바른 역할은 효율적 국정 운영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개편된 대통령 비서실은 업무 분담이 불분명하고 비서실 내의 횡적 협력체제가 미비할 뿐 아니라, 실무부처와의 유기적 협력체제를 구비하고있지 않다. 지난번 화물운송연대 불법파업 관련 대책마련이 제대로 이룩되지 못한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실제 분야별 수석비서관 간의 횡적 협조는 관련 정부 부처 간 협조의 출발이 되며, 각 부처 간의 협조와 조정 역할을 맡고 있는 부총리나 총리가 할 일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의 우선 순위가 무엇보다 높아야 할 경제 분야에는 수석비서관제마저 없어진 실정이다. 그 결과 경제부총리와 경제부처 장관들의 일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우선 경제부총리와 경제부처 장관을 대신해서 때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부담스럽고 인기없는 경제정책에 대해 대통령 비서실 내의 비경제 관련 비서진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대통령을 설득하는 역할을 해낼 조직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차제에 경제수석비서관제의 부활과 함께 필자가 지난 정부의 정부조직개편 이전부터 줄곧 주장해온 바 있는‘경제기획조정부’의 신설을 통해 정부의 경제관련 업무 조정력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본다. 국정 리더십의 제도화와 동시에 시급히 이룩되어야 할 것은 법치의 기틀을 확립하는 일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적법성을 따지기 전에 무조건 약자 편에 서면 정의의 편에 서는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며, 심지어 법과 원칙에 어긋나는 일도 지나친 온정주의로 용납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더욱이 정부가 이러한 풍조를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는 모습을 보여온 것이 더욱 큰 문제이다. 법과 원칙의 적용에 예외를 두지 않는 엄한 법치가 국정운영의 기본이 되어야 현재의 위기도 극복할 수 있고 참다운 민주주의도 가능하다. 따라서“법과 원칙을 어기는 사례에 대해서는 앞으로 엄단할것”이라고 얼마 전 대통령이 천명한 것을 수사(修辭) 아닌 행동으로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국가위기를 위한 특별법”도 기존의 법들마저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상황하에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조선일보 2003. 5. 26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