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위기에 빠진 이유 - 김석준
	2003-05-22
대통령이 위기에 빠진 이유 참여정부 출범 석 달이 지났건만 국정(國政)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과 화물연대의 물류대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과 교단분열, 한총련 합법화 문제 등 사회 곳곳에서 갈등이 확산되고 있지만 국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는다. 오히려 장관들이 이해집단의 시위현장에 나타나 사회갈등을 증폭시키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런 현상이 기본적으로 제도와 사람, 대통령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한다. 우선 제도의 측면에서 보면,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과거의 국가운영 시스템을 대부분 해체시키고 새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것이 정착이 안 돼 과도기적 상태다. 청와대와 총리실의 역할 분담, 국정원의 기능 축소, 국무조정실 역할, 관계기관 대책회의 등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측면에서 보면, 과거에는 관료와 전문가 중심으로 행정이 움직였지만 현 정부에서는 ‘코드’를 중시하면서 운동권 출신 386세대가 국정 방향을 결정하는 핵심이 됐다. 문제는 전문 관료와 운동권 참모 사이에 교류와 의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전문가와 관료들은 과거처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현 정권이 조직이나 제도 중심이 아닌 ‘내 사람’ 중심의 행정을 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경영이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로 흐를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또 장관이나 대통령이 스스로 비주류·친노동자라고 공개적으로 말을 해버리는 바람에, 기존의 행정 관료들이 장관이나 대통령의 스타일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도 있다. 공무원은 오랜 경험이 축적된 국가경영의 전문가들이지만 장관이나 대통령 눈치만 보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장관끼리도 관료 출신과 전문가 출신이 코드가 맞지 않아 과거 정권보다 관계부처 장관회의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NEIS는 교육부가 교총과 전교조, 학부모 사이에서 눈치 행정을 보는 극치를 보여줬다. 그런 정부밑에서 교단갈등은 오히려 증폭됐다. 정부가 갈등을 방임 내지는 조장한 경우다. 문제는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현 정부 참여자들은 재야시절 끊임없이 소규모 위기를 조장한 후, 이를 극복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해 왔었다. 하지만 아직도 재야시절이라면 모르겠으나,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 이런 방법을 쓰는 경향성을 보이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한미 관계도 긴장을 조성했다가 풀고, 노조 문제, 한총련 문제, 대기업, 언론과도 다 그런 식으로 풀려는 것같다. 청와대 조직은 과거보다 인력 월등하게 많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조직 운영을 정책 연구기능에 치중함으로써 위기관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 과거에 청와대는 대통령 참모 소내각으로 내각을 챙겼다. 하지만 책임총리제 한다며 청와대의 내각조정 기능을 거의 버렸다. 청와대가 겉돌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상업무관리는 국무조정실에서 관리한다고 해도 청와대는 위기관리, 총괄적인 조정역을 해야 한다. 정권 초부터 대통령이 너무 모든 현안에 직접 뛰어들면서 대통령 한사람에게 오버로드(overload)가 걸린 측면이 있다. 대통령 스스로 본인이 직접 나서니까, 총리 장관은 눈치만 보고 있다. 사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때 ‘이런 문제는 총리가 하고, 이건 장관이 책임져라’고 대통령은 물러서는 게 행정의 안정에 도움준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대통령이 너무 나서는 바람에, 계속되는 이해단체와 국민들의 요구를 대통령은 다 충족시켜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행동은 리더십과 권위 무력화로 이어졌다. 이는 대통령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솔직히 현재의 청와대 참모들은 문제를 일으켜만 봤지, 문제가 발생했을때 수습해본 사람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거대한 조직을 운영해보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청와대 기능개선을 위해 사람을 바꿀 필요도 있다고 본다. 방미(訪美)외교가 그나마 국민들에게 큰 안도감을 준 것은 안정적인 참모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석준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조선일보 2003. 5. 22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