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學은 傳統思想의 근대적통합인 “民學” - 신일철
	2003-05-16
東學은 傳統思想의 근대적통합인 “民學” 1. 儒佛仙 종합의 東學的 해석학 1860년 수운 최제우가 동학을 대각하고 제2세교조 해월 최시형에 의해 동학의 접·포의 교분조직이 확대되었다. 이 “원시동학”의 사상적 연원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갑진개화, 3.1독립운동에 이르는 동학운동이 근대적 민족사의 주맥이 되었다. 동학은 우리민족의 전통사상의 비파적 종합이며 그 어느종파나 특히 성리학적 학통의 칸막이에 구애받지 않고 전통사상을 자유자재로 종합, 재해석할 수 있었던 것은 최제우가 독서인적 학자가 아니라 종교적 신비체험의 각도과정의 예언자로서 기성 전통사상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종합을 가능케 했다고 보아진다. 사상사에서도 패라다임 전환과 같은 발상전환은 일단 전통사상과의 연속에서 떠나서 종교적 개종과 같은 참신한 예언자적 통찰이 주가 된다. 동경대전과 같은 한문체에는 성리학적 개념이 그대로 구사된 감이 없지않고 한글가사 ｢용담유사｣에서 오히려 우리 일상언어의 시적인 운문체에서 최제우의 사상적 독창성이 더 잘 드러나 있다. 비록 그 개념은 성리학 등 전통적 사상, 고전과 같으나 그 경전의 게슈탈트적 전체의 새로운 발상에 기초해서 동학경전을 다시 독해할 때 비로소 전통사상의 연속의 불연속에서 동학적 독자성이 드러날 수 있다. 동학의 경전은 기왕의 전통사상이란 텍스트에 대한 최제우 특유의 해석학이며 그런 해석학적 의식에서 동학의 독해가 가능해진다. 따라서 독학경전의 독해에서 유교, 불교, 도교 등의 개념을 요소주의적으로 분석하는데 그친다면 통속적으로 동학은 “유·l\;불·선 3교의 종합”이 되고 그 3가지 종교의 모자이크적 뜯어마침과 같이 외소화되어 동학의 진수를 놓칠 수 있다. 이것이 다름아닌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는” 과오이다. 예를 들어 동학경전 속의 “천”이나 “천주”에는 최제우의 동학적 이해가 배여있고 “敬天順天”도 성리학적 개념과는 다른 동학적 이해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동학은 중화문화권의 해체기에 전통문화에 대한 재해석에서 우리 민족나름의 자주적인 민족사상, 근대민족주의의 연원이 되었다. 그러므로 동학에는 위정척사의 유교 “원리주의”와 같은 척양척외의 언설이 있으나 오히려 유교 “원리주의”를 극복한데서 근대화지향의 동학의 가치가 나타난다. 그 때문에 동아시아 문화권의 “변법”(變法)적 전환기에 위정척사파와 개화파의 대립에서 동학은 그 전개과정에서 개화자강의 길로 나갔다. 세계사상의 역사에서 가장 보편적인 현상은 선행사상과의 완전한 단절에 의한 “창조”는 없고 모두가 전통을 기반으로 하여 재해석, 재적용의 해석학적 수행을 하고 있다. 근대 계몽주의와 특히 실증주의의 연구법은 특히 문학·역사&midddot;철학 등의 인문학 연구에서 전통사회의 모든 사상, 문화를 미개, 몽매 또는 비합리적 주술적인 것으로 물리치고 마치 과거나 전통과 완전히 단절된 이성적 합리주의의 실증적 설명이 출현했다. 이는 사상·문화가 가진 “이해(理解)”의 역사성을 무시하는 과거 허무주의의 오류를 범했다. 맑스주의적 사회 경제사적 연구도 사상·문화에 대해 계급주의적 경제사관에 의해 전통과의 단절을 몽상함으로서 해석학적 이해가 제외되고 말았다. 그것은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북한의 유물사관적 역사해석에서 “1894년의 농민전쟁”으로 규정하여 동학의 사상적 역할을 배제함으로서 동학혁명의 이해에서 “동학없는” 해석학적 빈곤을 초래했다. 가다마(H. C. Gadamer)는 계몽주의적 “방법”에 반대하여 특히 인문학 분야에서는 과거와 전통으로부터의 “선입견(先入見)” 또는 선행판단이 언제나 바탕이 되어 새로운 “이해”가 가능해진다고 하여 “이해”의 역사성을 그 연구방법의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가다마는 “이해”의 구조가 가진 歷史性의 해명에 힘썼다. 이런 관점에서 근대의 계몽주의에서 의해 “선입견”이 제거 또는 배제된 것은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다만 자기가 아는 自己知에만 국한될 수 없는 “作用史”에 귀속되고 他者와 傳承에 열려져 있다. 여기서 “作用史”란 것은 과거를 있는 그대로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부단히 과거와 현재가 서로 영향주는 영향작용사적 의식이 바탕이 되어 “진실”이 이해된다는 것이 그 취지이다. 역사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가 서로 영향주고 융합되는 “지평융합”에서 참다운 理解가 얻어진다는 점에서 이런 “융합”을 수행하는 것을 가다마는 “영향작용사적 意識”이라 했다. 이런 “이해”의 구조와 이해의 존재론적 구조를 통해 인간의 삶 그 자체의 근원적 성격이 되는 역사성을 재발굴하려 한 것이 가다마의 해석학이다. 이렇게 인간의 “역사성”을 외면해 버린 근대 계몽주의는 과거의 모든 것, 傳承, 전통 등 “선입견”을 비합리적인 것으로 미개, 몽매라고 하여 “탈주술화” 하는 것이 곧 합리화라고 인정했다. 이런 “계몽된 이성”의 자만은 마침내 인간의 역사성, 특히 “이해”의 역사성을 외면하는 큰 오류를 범했다. 동학경전의 독해에서도 최제우는 과거로부터 전승된 전통사상을 모두 비합리적인 것으로 보고 전통과의 단절을 감행한 것이 아니다. 최제우는 東學을 과거나 현재에도 비할 바 없고 들은 바 없는 독창적인 대도를 각도했다. 그러나 그의 東學의 창도에도 역시 과거와 현재의 “지평유합”을 통해 전통을 계승한데서 동학이 탄생되었다고 해석된다. ｢천도교 창건사｣는 유․불․선의 3교의 “合一”에 대해서 외견상 서로 상반되는 서술이 있다. ① 松月堂이란 노승이 “선생은 불도로 연구하느냐”에 대해 최수운은 “나는 불도를 좋아하지요”, “유도를 좋아하십니까”이 물음에 수은은 “나는 유도를 좋아하나 유생은 아니요” 세 번째로 “그러면 仙道를 좋아하시니까”의 물음에도 수운은 “선도는 하지 않으나 좋아하지요”라고 했다. 노승은 수운이 승려도 유생도 선도도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이에 수운은 유도 불도 선도 아니고 그 전체의 원리를 사랑한다고 했다. ｢天道敎創建史｣, pp.33～34. 이 세가지중 어느 것이 비교적 이치가 높고 감개 무량한 것이 어느 것이냐의 물음에 대한 수운의 응답은 “사자의 죽음과 개의 죽음이 어느 것이 더 무섭다 할 수 있겠소” 라고. 수운의 결론은 “무슨 진리든 그 시대사람에게 영혼을 넣어줄 수 없게되고 그 시대의 정신을 살릴 수 없게 되면 죽은 송장이니 이 시대에는 불법이나 유법 그밖의 모든 죽은 것으로는 도저히 새 인생을 거늘일 수 없는 시대지요” 동학의 요체는 “죽은 송장 속에서 새로 다시사는 혼을 불러 일으킬만한 무극지운을 파악하고 신인간을 개벽해야하지요.”라고 응답햇다. 위의 서술은 이돈화의 풀이로 볼 수 있다. 이 풀이에서 유․불․선의 3교에 대해서는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한 死神論과 유사한 논법을 보여준다. ② ｢창건사｣에 소개된 수운의 말씀으로 “내도는 원래 유도 아니며 불도 아니며, 仙도 아니니라. 그러나 吾道는 儒·佛·仙 合一이니라. 天道는 儒·佛·仙은 아니로되 유·불·선은 天道의 한 부분이니라. 儒의 倫理와 佛의 覺性과 仙의 養氣는 사람성의 自然한 品賦이며” ｢天道敎創建史｣, p.47. 라고 했다. 여기 “사람성 자연”의 신조어로 미루워 李敦化의 서술이 분명해진다. 최제우의 동학에 대한 탁월한 해석자인 이돈화는 동학이 “유·불·선의 合一”인 동시에 새로운 동학적 종합으로 규정했다. 특히 “佛敎의 道德과 佛의 覺性과 仙의 養氣”로 간명하게 도식화한 것이 이돈화의 동학해석이다. 동학이 전통종교와의 차별화를 위한 기본으로 “守心正氣” 4자가 강조된다. “仁義禮智는 先聖之所敎요 守心正氣는 唯我之 更定이니” ｢동경대전｣ “수덕분” 여기서 仁義禮智의 전통적 덕목을 존중하면서도 왕조시대에 인의의덕의 실천과 유리되어 형애화된 전통적 덕목에 대해 최제우는 그 덕목을 나의 마음을 지키고 기를 사로잡는 마음가짐의 자각으로 새롭게 제시한 것이 된다. 그런데 이 “守心正氣”의 마음가짐의 기초에서 “敬天” 신앙을 재발견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대자연과 인간도덕의 성립을 가능케하는 보편자 “天”이 왕조시대에는 객관적 형이상학적 사변의 대상이었으나 동학에 와서 만민에 내면화되고 자아주체화된 “한울님” 신앙으로 갱생했다고 보겠다. 2. 東아시아전통에 대한 “民學”적 발상전환 동학은 유불선 등의 전통사상에 대한 새로운 우리민족 주체의 종합이면서도 이미 전통시대의 최고의 가치원리인 “天” “天理” “天命”에 대한 재발견-재해석으로 근대적 개인과 민족에 내재하는 정신적 기둥을 고쳐 세우려고 한 “天道의 學”이었다. 조선왕조 말기의 가치규범 쇠미현상에 대해 최제우는 “天理를 돌보지 않고 天命을 따르지 않는 것”이라 했으니 동아시아권에서 “天命의 망각·불복”은 바로 “혁명”의 도래를 뜻하는 역사예언이 된다. 自五帝之後로 聖人以生하사 日月星辰과 天地度數를 成出文卷而以定 天道之常然하며 一動一靜과 一盛一敗를 付之於天命하니 是敬天命而順天理者也. “포덕문”, ｢동경대전｣ 최제우의 사회비판의 기준은 주자학적 자연법에 순응하는 상태요, 따라서 “인성군자(人成君子)하고 학성도덕(學成道德)하니 도즉천도(道則天道)요 덕즉천덕(德則天德)이다”라고 한 천명에 순응하는 상태이다. 이처럼 인간의 사회규범이 우주적 질서에 기초해 있으며 인간성 안에 내재하는 선천적 규범인 천도를 잘 따르는 것이 ‘군자’요 그것을 배워 닦으면 도덕이고 그 도는 ‘천도’(天道)가 되고 그 덕은 ‘천덕’(天德)이 된다는 것이다. 이 ｢도덕문｣에서 “名自爲心”은 통치이념이 무너져 무규범의 난세의 흐터진 인심을 뜻하고 특히 “莫知所向”은 “어디로”라는 가치관 상실의 허무감이다. 천명을 되살리는 길은 이제 왕조나 조정의 권세가 아니라 그 발상전환으로 만민이 각기 “天命”을 고루 되받은 평민 “혁명”의 각도(覺道)이고 서양의 함포세력과 같이 도래한 서학의 “天主”의 학과의 대결에서 우리의 통치층이 아니라 서민의 마음 속에 天의 內在를 새롭게 깨우치는 “侍天主”적 하울님의 발견이었다. 동학에서 “유도, 불도 수천년에 문이 역시 다했던가”의 가사에 주목해보면 仙敎나 道敎는 제외되어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교와 불교가 전통시대의 통치 이데올로기였고 道敎, 신선사상, 仙道 등은 민간신앙 또는 제야의 은둔독서인들의 반강권적 현실비판·현실도피의 사상이었다. 따라서 동학은 직접적으로는 서학에 대한 대항의식에서 “민족의 학”이었고 “治人”의 통치학인 “聖學” “帝王學”에 대한 “民學”이었다. 이처럼 民學의 발상기반에는 그 초기단계에 신비주의, 신내재론적 범신론,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主理說”에 대한 氣哲學的 “至氣”, 민속신앙적 요소가 배경에 혼재해 있게 된다. 근본적으로는 왕권의 통치권원이었던 “天”의 최고 가치규범의 기본이 동학에서는 세속화되고 만민에 편재하는 “네몸에 오신 한울님”의 내재천(內在天)이 되는데서 동학의 “民學”으로서의 기초가 세워진다. 중화문화권에서는 통치권이 天에서 받은 것으로 王權天授說이며 다시 성리학적 인성론에서 四端七情說에 기초해서 4단의 이성적 군자가 통치층이 되고 아래로 7정에 흐르는 民은 피치자가 된다. 이 인성론에서 大人과 小人의 신분차등은 하늘이 정한 규범이 되어 유교의 “修己治人”적인 “有爲” 유교적 “수기치인”의 “有爲”는 노장의 “無爲自然”의 대칭으로 추정한 개념이다. 의 上下主從的 “治人”적 지배를 정당화해왔다. 여기서 “修己”는 통치층의 군자가 되는 수양이오 4서3경의 오랜 학습과정에서 얻어진다. 그 다음 “治人”에서는 다스리는 자와 피치자의 2분법이 전제되어 있어 “士大夫”(독서인선비관료)의 군자교양이었다. 최제우의 동학은 바로 이런 유교적 통치교양과 군자의 독점을 해체할 것을 선언한 것이다. “聖學”인 제왕학의 요체는 덕치를 펼 수 있는 유교적 고전의 교양으로 ｢大學｣의 格致, 誠正과 ｢中庸의 明善, 誠身｣을 들었다. 이퇴계가 선조대왕에게 올린 상소인 “戊辰六條疏”에는 중국의 동중서(董仲舒)의 하늘과 인간의 상감(相感)에 대한 설에 기초해서 임금이 되는 “天命”은 “天愛”라고 해석했다. 이퇴계의 정치사상은 “천명”은 하늘이 인애의 덕치를 세상에서 펴기위한 代天者로서 군주가 된다고해서 “天愛”가 주로 王權天愛說로 해석되고 있고 “敬天”도 군왕이 잘못된 정치를 펴서 하늘의 면책을 받는 “天譴”으로 재앙과 이변이 생기면 이것이 임금에 대한 하늘의 견책이라 해석했다. 申一澈, “이퇴계의 天譴․天愛의 정치사상”, ｢현대사회철학과 한국사상｣(문예출판, 1997), pp.382～397. 같은 유교적 고전의 “군자”적 교양이 동학의 경전에서는 백성 누구나 쉽게 터득하여 도성덕립할 수 있는 “民學”으로 전환되었다. “10년을 공부해서 도성덕립 되게되면 속성이라 하지마는 무극한 이내도는 3년 불성되게 되면 그 아니 헛말인가.” “13자 자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心學이라 하였으니” 등에서 동학은 士大夫 지향의 경서 교양의 유식에 대한 “무지의 지”를 설파한 점에서,서구사상사에서 보는 독일 신비주의의 스콜라적인 번잡한 고리공론의 유식의 부정을 연상케 한다. 동학이 “治人”의 통치학과 다른 점은 누구나 동학에 입도하여 “군자”가 되는 손쉬운 도성덕립의 “民學”의 길을 연 점에서 동학에는 民의 “자율적 自治”의 학의 성격을 지닌 것을 알 수 있다. 왕조질서에서 “보국안민”과 經國濟世는 특출한 양반층의 독점적 권한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동학이 “보국안민”의 경세의 과제를 만백성인 民의 과제로 삼은 것을 “4民” 신분차등에서 사대부에만 독점되었던 경국제세의 과제를 모든 민족성원의 것으로 전환시켰다. 이는 근대국가의 국민주권적인 자유민권의식의 선구라고 볼 수 있다. 朴趾源의 ｢양반전｣에는 士·農·工·商의 4民의 신분차등이 天定의 규범이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무릇 하늘이 백성을 냈을 때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었다. 그 네갈래의 백성 중에서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그 선비를 불러 양반이라 한다.” 朴趾源, ｢양반전｣. 이 “4민”의 신분질서는 귀천의 구분이며 특히 공·상의 쟁이·상사치는 가장 비천한 계층이었다. 이런 4민의 귀천의 신분차등이 “天定의 규범”이 되게했던 전통적 통치 이데올로기를 동학에서는 시천주의 만민평등의 동학적 인간관으로 인간개벽했다. 이 ｢양반전｣에는 돈을 많이 가진 자를 “豪民”이라 했다. 이 호민들도 “우리들이야 남부럽지 아니한 부자이지만 늘 천하게만 산단 말이야”라고 한탄한다는 것이다. 동학은 전통적 신분차등 질서에서 소외되었던 서민, 호민, 서류 등의 천대소외와 통치층의 신분의 귀족적 우대의 낡은 신분규범을 깨뜨린 점에서 대등한 시민적 인간평등의 “신분개혁”의 신인간학이 되었다고 했다. 3. 서학의 종말론적 내세관과 구별되는 동학의 역사관 19세기에 나타난 우리의 민족종교, 동학이 최제우의 시천주 신앙, 그 범천론적 세속화윤리인 해월 최시형의 “양천주”, “事人如天”의 인간존엄의 윤리, 그리고 내세보다 현세의 “보국안민” “광제창생”의 현세적 민족자주, 왕조적 학정에 대한 개혁사상이 모두 현세에서 실현하려는 현세주의 사상이다. 최제우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이를 죽음에 임해서 하늘에 대한 공경인 “경천”의 자각이 생긴다는데 언급하고 서학과 같은 사후의 개인의 영혼구제의 내세관에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논학문”에서 세상 사람들이 어찌 天主를 공경하지 않느냐의 물음에 대해 최제우는 죽을때 다달아서 하울님을 부르는 것이 사람의 상정이라 했다. 또한 한울님, 천주의 경천의 마음이 미약한 것은 한울이 만민을 내었다느니 하는 것이 옛 성인들의 말씀으로서 지금껏 미루어 오는 것이며 그러나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는 사이에 그 자세한 것을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고 했다. 최제우는 “무지한 세상사람, 아는 바 천지라도 경외지심이 없었으니 아는 것이 무엇이며”(｢도덕가｣)라고 해서 아무리 학문적 지식과 경학에 박식해도 “경천”의 경외지심이 없으면 아는 것이 없는 “무지”와 같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동학의 경천, 시천주신앙이 죽은 후의 내세 개인 구령을 위한 과도기적 준비가 아닌 점에서 서학의 내세관과 구별된다. 도대체 최제우는 내세에 상제에 의한 영혼의 구원과 같은 서학의 현실 부정적인 원죄설을 그 전통사상의 배경에서 이어받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동학은 내세의 극락, 지옥의 그림도 그린 바 없다. 후세의 천도교 교리에서는 주로 “德業長生”의 표현에서 선교의 장생불사의 전통 위에 서 있고 죽음에 대해서는 “還元”이라 해서 한울이 냈던 생명이 죽어서 한울로 돌아가면 내세의 개인구령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일 천도교가 사후관으로 내세의 영혼의 구원을 도입한다면 동학의 서학적 개인구령의 내세관과 같아져서 어느덧 동학이 서학화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동학의 근본사상은 음양이치의 “氣化”의 설에 영혼론의 토대를 두고 있다. “천상에 상제님이 옥경대에 계신다고 보는 듯이 말을 하니 음양이치 고사하고 허무지설 아니런가”(｢도덕가｣) 동학은 서학과 같은 초월적 인격신인 “상제”=천주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런 내세의 영적세계의 가정에 대해 최제우는 귀신의 존재를 맹신하는 미신과 같다는 뜻에서 배격했다. 동학은 무속이나 그밖의 귀신신앙을 배척하고 “귀신”이란 다름아닌 음양이라는 탈주술적 시천주=“至氣”론의 합리화도 감행하고 있다. 동학의 이상적 인간관은 도덕적인 군자요, 신선사상의 도교적 표현으로는 “地上신선”의 높은 달관, 각도의 이상적 인격이다. “동학에 입도하여 그날부터 군자되어 無爲而化될 것이니 지상신선 네 아니냐”(｢교훈가｣)도 역시 전통사상에 바탕한 현세적 인간관이다. 더욱이 서학의 사후 개인구령에 대한 선교에 대해 최제우는 빨리 죽어서 천당가겠다는 “唯願速死”의 미신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부단히 한울님께 주노란 비는 말이 3십3천 옥경대에 나 죽거든 가게하소, 우습다. 저 사람은 자기 부모 죽은 후에 신도 없다 이름하고 제사조차 안 지내고 오륜에 벗어나니 唯願速死 무삼일고” 최제우의 동학과 서학 사이에는 역사적 시간관에서 서로 다른 문명의 전통에서 오는 큰 차이가 드러난다. 서학의 유대교적 그리스도교적인 역사적 시간관은 아담의 실낙원 이래의 원죄설에 기초해서 현세의 인간역사는 죄와 악의 현세이고 그리스도 탄생후 비로소 구원의 길이 열렸다는 구제사적 종말론에 기초해 있다. 따라서 서학의 역사에는 실낙원에서 시작된 원죄의 역사의 ‘시작“이 마침내 내세에 구원되는 역사의 심판에서 끝나는 종말론의 전통 위에 서있다. 그점에서 서학의 종말론적 미래는 죽은후의 천당이라는 복낙원(復樂園)의 내세관에 기초한다. 그와 대조적으로 동아시아의 유․불․선의 전통에 바탕한 동학의 역사적 시간관은 주역의 원환적 순환의 성쇄지리이며 따라서 역사의 미래가 서학에서와 같은 내세의 영혼구령의 종말론의 “끝”이 있을 수 없다. 역(易)의 성쇄의 순환론적 시간관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다만 성쇄의 현세적인 기복과 낮과 밤, 음양의 소잔에 따르는 4계절과 같은 성쇄의 과정이 있을 뿐이다. 또한 불교의 근본교리에서도 “諸行無常, 諸法無我”의 속세의 나, 개인은 “아트만”인데 그런 소아는 참다운 나가 아니다. 이런 주역, 불교의 “무아”등 역사적 시간관에는 개인구령의 내세관이 없다. 그런 동아시아 전통에 기초한 동학의 역사적 시간관에서 서학의 종말론적 내세관에 기초한 개인구령의 死后觀이 이끌어내질 수 없다. 동학은 현세에서 “경천 순천”의 지상낙원 건설의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점에서 서학에 대한 거부감이 당연히 생긴 것이다. 문제는 우리민족 문화 속에서 뿌리깊은 조상숭배와 제사의 문제에서 조상의 영혼을 인정한다. 이 문제는 侍天主의 동학교리에서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의 고민이 해월 최시형대에 제기되었다. 최시형은 조상숭배의 의식을 시천주의 동학원리에 맞게 제상상의 의식에서 과감하게 “向我設位法”을 내놓았다. 최시형의 해석은 조상의 혼령도 시천주의 원리에 따라 그 자손에 이어져 내재하게 되고 동학교도에서는 스승의 혼령이 제자속에 내재하게 된다는 점에서 역시 현세주의적 해석이 되었다. 특히 최시형의 “物物天 事事天”의 汎天論에서는 내세의 초월자로서의 신과 저승의 “神國”과는 다른 천의만유 편재설(ubiquitarian)을 택했다. 최시형의 동학에서는 스승의 시천주 신앙이 더욱 세속화, 현세화되어 노동과 생산, 일상사와 대자연에 천이 편재한다는 천편재설이 더욱 뚜렷히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신분차등 뿐만 아니라 양반사회의 노동천시, 상공업, 세속적 직업천시가 모두 극복되고 근대적 산업과 시민의 인격에 대해 한울을 모신 범천론적 신성화가 감행된다. 이 점에서 동학은 유교 “원리주의” 등 유·불·선의 전통사상의 원리주의를 극복하여 우리민족의 근대화개혁의 사상적 초석을 놓은 것이 된다. 4. 小結 : 東學의 유토피아는 自由民權社會 사상사적 관점에서 동학을 독해하면 쇠운기의 왕조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고 가치관의 위기 속에서 인간존엄의 만민 평등적 侍天主 신앙과 경천의 경외지심의 회복으로 “보국안민” “광제창생”의 새세상의 도래에 대한 역사예언을 읽을 수 있다. 이런 동학의 민족적 역사관이 근대화의 사상사적 토대를 마련했다. 좌파적 사회경제사 연구도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주로 서구 열강이나 일본 자본주의의 타율적 강제이전에 이미 우리 근대사과정 속에 자생적인 상공업, 산업화의 맹아가 많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사상사의 측면에서도 중화문화권의 해체에 대응해서 우리민족의 근대적 자주의식이 동학사상으로 각성되고 “十二제국괴질운수”라는 중화권의 붕괴를 예감하면서 “我東方” “我國”의 운수를 먼저 앞세워야 한다. 脫中華的 ｢보국안민｣의 계책을 높이 강조하여 근대적 민족국가의 “대한”의 민족의식과 주권국가의 비젼을 마련한 점에서 근대적 민족주의의 사상적 토대를 정초한 것이다. 이점에서 동학의 대각 1860년을 사상적 근대민족사상과 근대화발상의 원년이다. 이미 동학에서는 근대사상의 기본인 개인적 자아의 각성으로 개인의 기본권인 인권이념의 석각이 되었다. 서구 근대의 이성주의가 데카르트 철학에서 인간의 존엄성의 철학적 기초로서 각 개인이 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진리와 허위를 판별하고 선악의 도덕적 판단능력을 가졌다는 철학적 근거로 데카르트는 각 개인의 마음에 “자연의 빛”으로 이성능력이 선천적으로 본구(本具)되어 있어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존재가 존엄한 인격임을 인정했다. 여기서 각 개인의 생득적 이성의 본유는 다름아닌 신적 예지가 인간에게 분유(分有)되었다는 뜻이다. 동학에서 4민이나 상하귀천의 차별없이 각 개인이 “한울님 모신 존재”요, “양천주”의 도덕적 자율적 주체인 동시에 대등한 사람과의 관계가 “사이여천”이 될 때 한울님울 모실 인간존엄의 개인권이 인정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세로의 상하귀천의 신분차등을 철폐한 새로운 시천자간의 서로 “사람을 섬기는 한울같이 하라”는 “가로”의 근대시민적 관계를 기초로 한 자유민권의 시민사회의 모형이 싹튼 것이 된다. 동학도 보은 집회와 광화문 전 부합상소의 집단적 시위를 보고 우리조정에서는 동학의 대두에 대해 “民會”와 같다고 했다. 동학운동 속에서 민회, 시민운동, 시민사회의 자유민권이 싹튼 것이다. 이는 우리 근대민족 사상에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싹이튼 것이고 이 개인의 기본권을 기초로 할 때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정이 나온다. 동학경전에서는 만인이 모두 요순(民皆堯舜)이라는 언선을 기초로 해서 요순성세의 “無爲自然”의 이상향을 시사하고 있다. 왕조, 절대왕권의 중앙권력으로 다스리는 “有爲”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요순”의 이상사회와 같은 반강권적인 “無爲”의 자유민권사회상의 비젼을 엿볼 수 있다. 동학의 유토피아는 “광제창생”을 염원한 “安民”의 낙원었다. 동경대전의 한문체에서 보다 한글가사체의 운문에 자유분망한 문학적 표현속에 동학의 이상향이 잘 드러나 있다. 최제우의 동학적 이상향은 오늘의 우리에게 어떤 정신적 유산을 남겨 주었을까. 왕조 말기의 정치가 ‘불고천명(不顧天命)’·‘불순천리(不順天理)’의 무규범에 빠진 난세, 쇠망단계에 대한 비판의식에서 최제우가 그린 유토피아는 ‘요순성세’의 회기였고 그 정치는 백성이 모두 요순이 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시민적 자유연합 사회였다. 최제우는 그의 동학인 ‘무극대도’가 실현된 이상향을 ｢태평곡｣·｢격양가｣의 동아시아적 유토피아 원형의 회복으로 다시 자각했다. 춘삼월 호시절에 태평곡 격양가 불러보세(｢안심가｣). 하원갑(下元甲)이 지나가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경양가를 불구에 볼 것이니(｢몽중가｣). 우리 한국 등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반강권적인 이상향은 ｢격양가｣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서 격양은 땅 파는 농사꾼 민중의 생업이다. 이 ｢격양가｣는 요임금 때 태평세상을 구가한 한 노인의 노래로 전해지지만 그 노래의 전승에 깊은 뜻이 깃들어 있다. 해뜨면 밭에 나가 농사짓고 해가 지면 돌아와 쉰다.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갈이해서 먹은니 제왕이 권력인들 내게 무슨 상관이 있을손가[日出而作, 日入而息, 鑿井而飮, 耕田而念, 帝力于我有哉]. 이 ｢격양가｣에서는 밭갈이해서 먹으며 자력으로 살아가는 백성에게 제력(帝力), 즉 제왕의 권력이 그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뜻에서 권력의 간섭과 압제가 없는 민의 자유사회를 희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에는 노자의 무위자연의 민중자치적 자유가 드러나서 유가(儒家)나 법가(法家) 등의 ‘유위(有爲)’에 대한 안티테제가 담겨 있다. 왕조 권력의 백성을 들볶고 통제․억압하는 유위의 강권에서 해방된 무위의 이상향이 ｢격양가｣의 뜻이며, 중앙권력이 덜 다스려서 “작은정부”에서 백성이 자율적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무강권의 자유민권의 유토피아가 최제우의 동학의 이상향이다. 이 ｢격양가｣에 기탁된 동학의 지상천국상의 정신적 의의는, 강권의 횡포가 없는 자유사회와 시민의 자율적 자유권을 보장하기 위해, 권력이 인위적 조작으로 전체론적인 유토피아 건설의 허상을 강행하기보다는 시민자율의 자치공간과 경제적인 시장질서 등 시민사회의 자생적 질서가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시민사회의 가치관을 예감한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오늘날의 과학기술 만능의 풍조에 대해, 생태학적 자연환경에 대한 경외지심의 회복으로 동학적 환경윤리가 재발견될 수 있다. 권세 있는 세도가들이 그의 권모술수로 무엇이든지 제멋대로 강행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이성적 오만을 자제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는 동학의 ‘무위이화(無爲而化)’의 가르침을 오늘에 맞게 재해석하여 되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신일철 (고려대 철학과 명예교수 / 시민회의 고문) 출처 - 동학학회학술회의 2003. 5. 16 기조연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