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 `역할` 달라져야 - 남승희
	2003-05-12
교장선생님 `역할` 달라져야 교육계의 갈등이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그 가운데서도 ‘교장’에 관한 논란이 뜨겁다. 전교조가 교장선출보직제의 연내 도입을 목표로 추진본부를 발족했고, 교육부와 교총은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교장과 행정적 ‘상하’ 관계에 있는 교사들은 물론이고 학부모들도 ‘교장 선생님’에 대해서는 권위적이어서 상담은커녕 만나기조차 부담스러운 느낌을 갖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대학생인 아들 녀석에게 그가 다녔던 미국 초등학교 교장에 대한 기억을 들어보았다. “미국에서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물리적 체벌이 금지돼 있기 때문에 학생이 잘못했을 때 행정 조치를 받는 것이 보통인데, 교장 선생님의 체벌로 대신할 수도 있었어요. 교장실에는 나무로 된 밥주걱 모양의 체벌용 매로 ‘슬랩 스틱(slap stick)’이라는 것이 있었죠. 한 번은 친구랑 싸우다가 둘이 교장실로 불려갔어요. 담임선생님 입회 아래 교장선생님이 저희들에게 왜 맞아야 하는지를 설명하신 후 ‘슬랩 스틱’으로 엉덩이를 한 대 때리셨어요. 맞는 순간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너무 놀라 숨이 넘어가도록 울었어요. 담임선생님이 달래주셔서 진정하고 보니 소리만 컸지 엉덩이에 맞은 자국도 없고 아프지도 않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요.” “또 한 번은 늦잠을 자다가 학교로 달려갔죠. 그런데 학교에 아무도 없는 거예요. 당황해서 교내를 이리저리 헤매는데 교장선생님께서 저를 발견하곤, ‘너 오늘 학교에 왜 왔니. 오늘 휴교잖아’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휴교일인데 교장선생님께선 왜 학교에 계시냐고 여쭈었더니 너같은 학생이 학교에 왔을 때 안전하게 귀가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저를 선생님 차로 집까지 데려다 주셨어요.” 그가 기억해 낸, 그리고 내가 지켜 봤던 미국 교장의 역할은 우리와는 사뭇 달랐다. 학교 운영과 안전 관련 사안이 교장의 주된 업무였다. 연중 몇 차례 개최되는 학부모·교사회의(Parent/Teacher Conference)를 준비하고 지원하는 일은 교장의 주요 업무 가운데 하나였다.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화재 대피 훈련, 지진 대피 요령, 교내 안전 수칙교육 등은 소방관이나 경찰관, 자원 봉사자의 도움도 받지만 기본적으로 교장의 몫이었다. 매일 아침 학생들이 학교 버스에서 내릴 때나 귀가 때 마지막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았던 사람도 교장이었고, 담임이 결근했거나 대체 교사를 투입할 수 없는 경우 수업을 대신 맡는 것도 교장의 몫이었다. 교장실도 인상적이었다. 교장실은 학교 건물 입구에 있었는데, 벽면이 유리로 돼 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4평 정도 크기의 사무실이었다. 집기는 책상, 파일 서랍, 의자 2개, 성조기, 그리고 커다란 곰 인형이 전부였다. 그런데 곰 인형은 말썽 부린 어린이들이 벌로 교실에서 쫓겨나 교장실로 격리(?)될 때 어린이의 소외감과 두려움을 달래주는 데 쓰였다. 물론 우리 나라와 미국의 교장 역할이나 권한이 다른 것은 문화나 교육행정 구조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교육 발전을 위해서 교장의 역할과 권한이 지금과는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장은 학교 운영과 경영의 책임자다. 교장은 교사와 수직적 관계에서의 감독자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에서의 행정 책임자이고, 학교를 효과적으로 운영하며 학생들의 학습 환경을 안전하고 편안하게 조성하기 위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역할을 재규정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교장은 교장실에 앉아 결재하고 회의하는 것이 주업무가 아니라, 학생들이나 학부모들과도 자주 만나고 학교 정원과 학교 시설까지도 점검하는 ‘바쁜’ 사람이 될 것이다. 만약 교장이 교육 공동체의 자주적 결정을 존중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한 의사결정 과정 체제를 확립하기보다는 학교의 모든 사안을 직접 결정하지 않으면 학교 운영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학부모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학부모는 학교 교육의 문제나 관심사에 대해 언제나 교장과 상의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 교육에 불만이 있을 때는 대화를 통해 교장에게 해명을 요구할 수 있고 교장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것은 학부모의 정당한 권리이고 교장의 당연한 책무다. 학부모의 이기심이나 빗나간 교육열로 비하하거나 교장의 권리 침해라고 비난하는 권위주의적 발상은 버려야 한다. 학교 자치의 확대를 위해서도 교장의 전문성은 강화돼야 하고 자격 요건과 심사 기준도 엄격해져야 한다. 교사의 승진 욕구가 줄어들도록 교장의 권한과 관리직 우위 풍토도 바뀌어야 한다. 새로운 교장상 확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들 녀석의 기억 속에 있는 ‘쿨(cool)’한 교장선생님을 우리 학교에서도 만났으면 좋겠다. 교장승진제 또는 선출보직제에 대한 논의는 그 다음이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수 / 시민회의 교육포럼 정책위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5. 10 살며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