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동맹다운 신뢰` 회복을 - 박효종
	2003-05-12
한·미 `동맹다운 신뢰` 회복을 이번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訪美)에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국내외 상황으로 보아 긴급한 현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북한 핵문제가 중차대한 현안임에 틀림없긴 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회담의 결과 한·미동맹의 재결속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이 전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수도 있다. 또 한국의 대외 신인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물론 한·미 간에는 시급한 경제적 현안도 있다. 하이닉스반도체 관세 문제, 한국의 이라크 재건 참여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보장받는 문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 관계에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있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불협화음과 파열음은 그치지 않았다. 물론 그 원인은 실타래처럼 엉켜 있어 쾌도난마같이 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번 정상간의 만남에서는 상호 불신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완강한 태도로 말미암아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는 북핵 문제의 해법에서 상당한 이견을 보여 왔다. 한국 정부는 ‘전략적 사고’라는 말이 무색하리만큼 외곬으로 평화적 해결을 강조해 왔고, 미국에 의한 군사적 제재는 물론, 경제적 제재도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최근에는 그 동안의 주도적 역할론을 바꾸어 “3자회담에 참석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방침을 정했다. 미국은 무척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한·미 공동성명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어떤 내용이 담길지 적이 궁금하다. 뭐니뭐니 해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는 한·미 동맹 관계의 재확인일 터이다. 50년된 동맹 관계는 우리에게 각별한 것이었다. 정부 수립부터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까지 미국의 도움은 절대적이었다. 또 호전적인 북한에 대해 안보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미국과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존중이라는 가치관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했고 국력도 강해졌으며 민족적 자아 의식도 자라났다. 특히 김대중정부 때부터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결과 북한과는 적이기에 앞서 한 민족이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미국도 혈맹이라기보다는 외부 세력으로 바라보려는 흐름이 강해졌다. 미국도 최근 9·11테러 이후로 안보에 관한 인식이 변했다. 예방적 선제공격론를 내세웠고, 또 세계의 ‘울트라 슈퍼파워’로서 단독으로라도 전쟁을 치를 수 있는 국력을 과시하게 되었다. 이라크전을 승리로 이끈 이후 미국은 욱일승천의 기세다. 한편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에서 반미(反美) 감정이 분출되자 반작용을 불러일으켜 미국에서는 반한(反韓) 감정이 넘치게 되었다. 상호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결과 미국 내의 보수 논객들은 한국이 전략적 가치가 없다며 미국은 한국을 포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때 맞추어 미국 행정부도 주한 미군 재배치 문제를 들고나왔고, 한국 정부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미군 재배치 문제를 논의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영원한 혈맹의 결의를 다짐하고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면서도 명분보다는 ‘전략적 선택’을 유달리 강조했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하겠다는 자주 외교의 한 단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미 간에 코드가 엉키게 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왜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물론 복합적이다. 냉전이 끝나 점차 상호 간의 필요를 덜 느꼈기 때문일 수 있고 한국의 민족주의가 급성장한 결과일 수 있으며 또 미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가 기세를 얻은 결과일 수도 있다. 엄연한 사실은 지금 한·미 양국은 결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잃을 수 있는 것이 더 많고 동맹 관계와 결속을 재다짐함으로써 서로 간에 잃을 수 있는 것보다 얻을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점이다. 물론 두 정상간의 짧은 만남으로 양국 간의 현안들이 일거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안의 복합적 성격상 획기적 돌파구가 열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특히 감정 문제가 개입돼 있을 때 이성적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만남이 반미·반한 감정의 골을 넘어서서 상호 간에 선의를 이해하고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또 그 내용이 공동성명 안에 담길 수 있다면, 의미있는 만남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우리는 노 대통령이 의미있는 결실을 거두고 귀국하기를 고대한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5.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