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부산 시장 후보 - 한영탁
	2002-05-07
해괴한 부산 시장 후보 우리는 며칠 전 신문. 방송을 통해 한 가지 기괴한 일을 알게 되었다. 새천년 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씨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도동 집으로 찾아가 만난 것이었다. 그 전날 김대중 대통령을 찾아가서 당선 인사를 했으니 바로 전 대통령인 김영삼씨를 찾아가 인사를 하는 것은 의례적인 예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태우, 전두환, 최규하 등 다른 전직 대통령은 예방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의례적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 노후보는 YS를 만난 자리에서 자신의 대선 노력에 후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민주당의 부산 시장 후보 공천 문제와 관련하여 3명의 후보 명단을 제시하며 그중 한 사람을 골라달라고 의중을 물었다고 한다. 그는 YS의 뜻을 존중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사실상 민주당의 부산 시장 후보 결정권을 YS에게 위임한 셈이다. 민주당의 광역시장 후보는 경선을 통해서 결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경선을 통해서 엊그제 대선후보로 확정된 사람이 당원의 뜻도 알아보기 전에 자기네 당과는 상관없는 YS에게 부산 시장 후보 지명을 위임했다니 해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선 후보가 되면 우리나라 두 번째 가는 대도시인 부산광역시의 시장후보쯤은 당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제왕적 대통령", "제왕적 당총재", "제왕적 지도자"라고들 일컫는 시쳇말처럼 "제왕적 후보"도 있나 보다. 당원의 총의라든가 민주적 절차 따위는 아랑곳 없는 독선의 표출이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얼마나 제멋대로 국정을 좌지우지할까 걱정된다. 또 YS가 누구인가? 얼마 전까지 노후보의 소속 당총재를 겸하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을 "독재자", "독선자"로 매도해온 사람이 아닌가? 그리고 노후보는 어떻게 했나? YS를 "식견이 모자라는 지도자"라고 비아냥거린 사람이 바로 노후보 자신이 아니었던가? 그는 언젠가 YS를 두고, "김영삼은 부산시민의 자존심을 팔아먹었다"고 매도하기도 했다. "YS가 영남에서 일부 정서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무 계기도, 명분도 없이 가서 도움이나 받는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고도 했다. 그런 YS를 상왕처럼 떠받들고 머리를 조아려 부산 시장 후보 결정권을 헌납하니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해괴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다. 노후보가 낙점을 간청하면서 내놓은 후보 3명도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자기네 당 사람이 아니고 반대당인 한나라당 사람이 둘이나 된다. 현재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박종웅과 한나라당 전 의원 한이헌이 그들이고 문재인 변호사가 끼어있다. 정치적 견해나 소신. 주의, 주장은 안중에 없고 부산, 경남 시민의 환심만 사서 표만 얻으면 된다는 원칙 없는 작태가 아닌가? 오죽하면 노후보를 지지하는 인터넷 펜클럽 "노사모" 홈페이지에까지 이런 빈축의 목소리들이 나올까? "개영삼"이란 ID를 가진 사람은 "후보 되고 한다는 짓이 영삼이에게 (영삼)시계 보이며 애교 떨고 아양 떠는 것입니까?"라고 비판했다. 강명구란 사람은 "김 전 대통령을 찾아가서 참으로 민망한 모습으로 구애하는 모습을 보면 기존의 3김 정치로 되돌아가려는 모습으로 보인다"고 했다. 박모씨는 "YS를 만나 기분 맞추는 발언을 했다는 것은 노무현답지 않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YS면담이란 말인가?"라고 나무랐다. "변짱"이라는 네티즌은 "김영삼과 손잡는 게 대의라고? 웃기는 소리, 대통령되려고 환장한 수작일 뿐"이라고 질타했다. YS는 실패한 정치인이다. 정치 개혁을 염불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후보가 실패한 대통령인 YS에게 매달리는 이런 해괴한 퇴영적 작태를 보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부산시민들이 그래도 YS를 사랑하는지도 의문이다. 한영탁 (시민회의 바른언론포럼 회장 / 전 세계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