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들이 왜 거리로 나가나 - 남승희
	2003-05-07
선생님들이 왜 거리로 나가나 ‘스승의 달’ 5월에 교육계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보는 학부모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전교조의 교육행정 정보시스템(NEIS) 반대 및 연가투쟁 선언과, 전교조에 맞선 교장협의회의 장외집회 선언은 교단의 문제해결 방법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아 학생들 보기가 민망하다. 그야말로 폭풍전야다. 그런데 이 폭풍이 무엇을 날려버리기 위한 것인지, 학생들의 교육환경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상황이 개선될 수 있기나 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어린 학생들에게 ‘우리 선생님’들의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그들의 ‘눈’이 두렵기만 하다. 아무리 문제 해결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진통의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지금이 과연 교사와 교장이 길거리로 뛰쳐나갈 때인가. 조금만 넓게 보면 우리 교육을 둘러싸고 있는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최근 발표된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한국의 인적자원개발 지표 2002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개발지수에서 우리나라는 OECD회원 28개국 중 27위를 차지했다. 교육체계와 대학교육의 사회요구 부합도조사에서 각각 세계32위, 41위로 교육의 국제경쟁력이 하위권으로 나타났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학원 수강을 권하는 판에 학부모인들 어쩌겠는가. 대학을 가기 위해 사교육비는 가계를 위협하고 ‘기러기 아빠’들의 서글픈 사연들이 줄을 잇는다. 두 살이 지나면서부터 영어다, 한글이다 하며 학원이나 과외행진에 합류해야 하는 현실이다. 과외 행진은 취업에까지 이어진다. 한 조사는 대학생의 53%가 취업 과외를 받고 있고, 교사 임용고사를 준비하는 데도 학원수강은 필수라고 말한다. 청년 실업률(8.7%)은 전체 실업률(3.6%)의 2배를 넘었고 OECD 국가 중 2위를 기록했는데,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한국의 경직된 교육 시스템과 고학력 실업자 문제 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학교에 대한 무용론(無用論)이 제기될 만한 상황이다. 적어도 우리 교육체제가 고비용·저효율의 전형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셈이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앞에 두고도 교장과 교사가 반목과 불신으로 다투기만 할 텐가. 사실 말이지 교장협의회의 길거리 투쟁 선언은 전교조의 ‘교장선출제 연내 추진’ 선언이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고 서승목 교장을 추모한다고 하지만 4월초에 발생한 일을 5월 11일에서야 대회를 개최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방법에서도 맞지 않는다. 전교조의 NEIS 반대 연가투쟁 선언도 시기 면에서 정당성이 없어 보인다. NEIS가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인권위원회의 최종 판단을 요청해 놓은 마당에 인권위 결정은 단지 참고 사항일 뿐이라는 전교조의 주장은 또 무엇인가. 그래서 교장협의회나 전교조의 투쟁 선언은 모두 설득력이 없다. 교장과 교사는 학생들에게 자신과 견해가 다른 집단을 어떻게 설득하고 타협해 나가야 하는지 가르쳐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이 학교와 학생은 뒤로한 채 길거리로 나서서 삭발하고 단식하며 확성기로 구호 외치고 서로 낯 붉히며 비방하고 머리띠와 어깨띠 두르고 전단 뿌리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학생들이 보고 배울까 학부모들은 걱정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과 학부모가 교육포기 선언을 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 학교 현장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교장협의회의 결의대회나 전교조의 연가 투쟁은 모두 취소돼야 한다. 학교 현장의 문제는 있는 그대로 드러내서 개선하되 문제 해결 방법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통한 대화와 설득이어야 한다. 물리적 힘이나 일방적 주장으로는 해결의 합의점을 찾을 수 없다. 지금의 교단 갈등 해소 여부는 학교 현장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학생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바탕이 되는 교단의 자율적인 갈등조정 능력 발휘가 절실한 때다. 교원은 책무와 헌신의 자세로 학교와 학생을 지켜야 한다. 길거리는 그들의 공간이 아니고 교원은 전사(戰士)가 아니다. 남승희 (명지전문대 교육학 교수 / 시민회의 교육포럼 정책위원) 출처 - 조선일보 2003. 5. 7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