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의 한계 - 정진영
	2003-05-02
장관급회담의 한계 북핵위기 해법을 찾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제10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4월27일에서 29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됐다. 이번 회담이 국내외적으로 큰 관심을 끈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베이징에서 열렸던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사실을 언급한 이후 처음 열린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참여정부의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남북 고위당국자간 회담으로 신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의 향방을 짐작케 할 수 있는 회담이었기 때문이다. 우선 북핵위기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남북한은 1992년부터 발효된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의 제조, 반입, 보유, 사용을 일체 금지하기로 돼있다. 따라서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것은 남북 합의를 중대하게 위반한 사건에 해당된다. 한국은 북한과의 공동선언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핵무기를 모두 철수시켰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합의 위반은 매우 심각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북한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회담에 한국의 참여마저 거부하면서, 북핵문제는 어디까지나 미국과의 문제라고 고집하고 있다. 한국정부로서는 당혹감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한국측 대표단은 이번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에게 북한의 핵보유 불가와 비핵화 공동선언의 실천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결과 핵문제를 장관급회담의 공동선언문에 어떻게 포함시킬 것인지를 둘러싸고 남북 대표단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회담일정을 연기하면서까지 이루어진 협상의 결과로 나온 타협안은 결국 이전의 장관급회담에서의 합의안 수준인 "한반도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계속 노력한다"는 선에 그쳤다.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행을 포함시키려던 한국의 노력이 실패한 것이다. 다음으로, 향후의 남북관계에 대한 의미를 짚어보자. 평화번영 정책으로 명명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기본적으로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가 원칙과 신의, 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에 기초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대북정책의 성급한 성과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미동맹의 강조, 이라크전 파병 결정, 대북송금 특검법 공포 등은 신정부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변화를 예상케 하는 대목들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이번 기회에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을 시험해 보기 원했을 것이다. 또한 미국과의 핵협상을 진행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남북교류협력 강화를 매우 필요로 한다. 한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 확보뿐만 아니라 이른바 민족공조를 내세워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북한측은 한국에 대하여 6.15 남북공동선언의 계승과 이행을 그토록 강조했다. 북한의 이러한 요구는 공동선언문 제1항에 그대로 반영됐다. "남과 북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재확인하고 공동선언을 변함없이 준수하며 철저히 이행해 나가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장관급회담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갖는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북한에 대하여 우리의 관심사항과 요구를 당당히 제기하고 끈질긴 협상을 시도한 점은 평가해 줄 만하다. 그러나 북핵위기 해결과 관련하여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황에서 북한이 요구한 여러가지 교류협력사업에 합의한 것은 북한의 전략에 말려든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민족공조'를 따라가다 보면 북핵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鄭璡永 (경희대 국제관계학 교수 / 시민회의 운영위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5. 1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