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노사협상 잘못됐다 - 김태기
	2003-04-23
철도 노사협상 잘못됐다 철도 파업사태를 피하면서 교통ㆍ물류대란 위기를 넘기게 되었다. 정 부가 협상 막판에 가서 노조 요구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위기에서 벗 어나게 되었지만 많은 과제를 남기고 있다. 철도노사의 합의 내용을 보면 민영화 철회나 인력 충원뿐 아니라 해 고자 복직이나 가압류 및 손해배상청구 철회 등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쟁점이 포함되어 있다. 경영적자에 시달리는 철도 부문의 민영화 철회나 인력 충원은 사실상 국민들의 세금 부담 증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이러한 결정을 내릴 때 철도노조의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경제와 국민 들의 이익을 고려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을 한 흔적이 이번 합의 내용에 보이지 않기 때문 에 노조 요구에 떠밀려 합의를 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정부는 대화와 타협을 바탕으로 갈등을 해결하겠다고 했다. 이래서 정부는 철도 부문의 노사 합의를 하나의 성과라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화와 타협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 지를 생각해야 한다.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목소리 크고 힘이 센 노동조합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는 비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철도와 같이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 부문의 노사협상에서 정부 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리인 지위에 있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는 합의를 한다면 협상의 정도(正道)에 반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는 철도노조에 경영합리화와 노사관계 안정을 위 한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하고 세부 내용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골격 정도는 합의에 명확하게 포함시켜야 했지만 그러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잘못이 더 이상 반복돼서는 안된다. 힘없는 국민일수록 구조조정의 고통을 크게 겪고 있는 마당에 구조조 정의 필요성이 크지만 조직적인 힘으로 버틸 수 있는 소수가 자신의 이익만 관철한다면 우리 사회는 신뢰의 붕괴에 직면하게 된다. 또 갈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잣대가 되는 공정성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철도와 같은 공공 부문의 노사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대폭 보완해야 한다. 대통령 지시에 따라 분쟁의 해법을 찾는 권위주의적 방식에서 탈피해 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조합도 피해자가 된다. 어떤 노동조합은 봐주고, 다른 노동조합은 왜 물먹는지가 시빗거리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의 노사갈등을 해결하는 데 바로 국민 참여가 필요하다. 노 사가 속으로는 담합해 구조조정 요구를 피하고 편법으로 임금을 인상 시키는 잘못된 관행 아래서 공공 부문은 비대해지는 반면 국민들의 삶은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된다. 따라서 국민들이 공공 부문의 경영과 노사관계의 실상을 알 수 있도 록 함으로써 노사 양측이 국민의 이익을 배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 정부는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나라 내부의 최대 현안은 노사문제인데 공론화 과정도 없이 정책을 크게 바꾸고 있다는 신호가 두산중공업이나 철도 등 개별 노사분쟁을 통해서 나타나고 있다. 노사정책을 바꾸려면 아예 명확한 로드맵을 제시하고 이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도 제시해야 한다. 공기업의 민영화를 재고한다면 경영합리화 방안은 무엇인지, 그리고 불법파업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면 합리적인 노사협상 문화의 정착 방안은 무엇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장관과 총리도 노사문제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천명하면 자신 의 직책을 걸면서까지 지키는 자세를 보여줘야 한다. 민영화를 다짐해놓고 슬그머니 후퇴하는 잘못을 반복하다 보니 정책 과 정부에 대한 신뢰는 실추돼왔다. 이 때문에 노사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 는 게임의 규칙도 흔들려 왔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젊은이들은 갈수록 취업의 희망을 잃 어가고 있고 동시에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노사대립이 격화되고 있는 사이 중국은 한국 경제를 빨아들이는 블랙 홀로 커가고 있다. 이 점은 노사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정부와 노조, 그리고 사용자가 인식을 공유할 대목이 돼야 한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경영환경개선운동본부 정책위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4. 23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