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과 함께 무너진 바그다드 - 박효종
2003-04-11
동상과 함께 무너진 바그다드 미군에 의한 바그다드 함락과 더불어 도시한복판에 있던 6m 높이의 후세인 동상이 무너지고 시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구소련이 붕괴하면서 스탈린의 동상, 레닌의 동상이 무너지는 것과 오버랩될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먼지속으로 사라진 동상이야말로 30년에 걸친 이라크의 철권통치가 끝났다는 퍼포먼스였다. 동시에 국민을 총칼로 다스리면서 패도(覇道)를 추구해온 통치자의 말로가 어떠한 것인지를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쯤되면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기 위한 전쟁이라는 미·영 연합군의 전쟁명분도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전쟁이란 비극적인 것이다. 반전운동가들의 구호를 되새길 필요없이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 캐서린의 죽음을 통하여 전쟁의 최악의 희생물이 군인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여자 등 민간인이라고 절규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호소는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정밀폭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오폭으로 인한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은 전쟁의 참상을 대변한다. 또한 간간이 TV에 나와 외부의 침략자에 맞서 결사항전을 호소하는 후세인의 모습에서 12세기 기독교인들의 십자군전쟁에 맞서 이슬람을 지켜냈던 살라딘의 모습이 연상되기조차 하였다. 실제로 세계의 반전주의자들은 미·영연합군의 무력침공만을 규탄했을 뿐, 이라크주민들의 비인간적인 삶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었다. 하지만 눈을 감은채 선과 악 혹은 ‘더 큰 거악’과 ‘더 작은 거악’을 저울질하는 ‘정의의 여신’이 있었다면, 어떤 악이 더 사악하다고 판단했을까. 바그다드에 진주한 미군들을 환호하는 이라크 시민들의 태도에서 해답의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사담 후세인은 수차례 대통령 연임에 성공했고 가장 최근의 선거에서도 지지율 98%이상이라는 놀라운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전쟁전만 하더라도 이라크 국민들은 후세인을 중심으로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참고 단결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 통치기간에 이렇다할 무장봉기도 없었다. 하지만 후세인은 스탈린 못지않은 악명높은 독재자였다. 정적들을 무참히 처형했고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여 자국내의 쿠르드족 5000여명을 몰살하였다.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는 곧 죽음과 고문이었기 때문에 나올 수 없었다. 아버지는 대통령, 아들들은 군사령관하는 식으로 꾸려가는 사악한 족벌정권이었다. 아무리 국가 주권의 불가침성과 내정간섭불가 원칙이 존중되는 시대라고 해도 인류의 보편적 도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후세인의 통치방식이 옹호되거나 미화될 수는 없다. 이 사실은 후세인의 가혹한 박해를 피해 망명한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증언하는 내용일 뿐 아니라, 이번 미·영 양국의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까지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다만 이들 나라는 미·영 양국이 유엔안보리 결의 1441호에 추가하는 새로운 결의 없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개시한데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무너진 동상에 대해 수많은 바그다드시민들이 환호하고 있는 모습에서 과연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어야지 사람들로부터 피눈물을 자아내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 또 반대자들을 내치고 살육하고 고문하기보다는 그들의 비판을 받아들이고 더불어 포용하면서 상생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실상 정치권력의 사악성은 상상을 초월할 수가 있다. 권력의 경쟁자를 없애기 위해 베들레헴 지역의 세살이하 어린아이들의 살해를 명령한 헤롯이나 로마에 불을 지르고 시를 읊다가 막상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오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뒤집어씌어 원형극장에서 사자밥이 되게 한 네로가 바로 그 전형적 사례가 아닌가. 그러나 반인륜적 야만적 통치는 역사나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통치자들도 그러한 절대권력의 사악한 유혹에 빠질 수 있음을 이번 이라크 사태는 여실히 보여준다. 얼마나 통치가 철권이었으면 스스로 개선되지 못하고 외부의 무장개입에 의해서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었을까. 오늘의 이라크 사태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에도 중대한 경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억압 위에 지탱되는 정권이야말로 모래성과 같은 것이다. 이번 이라크 사태야말로 정치와 통치의 정도가 어떠해야하는 지를 새삼스럽게 상기시키는 ‘반면교사’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박효종 (서울대 정치학 교수 / 시민회의 정책위원장) 출처 - 문화일보 2003. 4. 10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