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日의 선택은 - 제성호
	2003-04-09
金正日의 선택은 북한 당국이 지난 달 남북경협 실무회담(경협제도 실무협의와 해운협력 실무접촉)을 일방적으로 연기한 데 이어 지난 7일 열릴 예정이었던 제10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무산시켰다. 노무현 정부 들어 벌써 두 번째 남북회담 불발이다. 일언반구 해명도 없이 회담개최 약속을 깨는 것은 신의에 반하는 일이며, 우리에 대한 하대(下待)요 결례라고 할 것이다. 북한측의 태도를 보면서 지난 수년간 쌓아올린 남북간의 신뢰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남북장관급 회담이 열리면 우리측이 '평화번영정책'과 북한 핵문제 해법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었으니 북한의 회담거부는 '들을 것 없다', '회담 해봐야 얻을 것 없다'는 부정적인 대남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북한이 이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선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북한의 남북회담 거부는 한국 정부의 이라크전 파병 결정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해석된다. 이라크전 파병은 전세계에 확산되고 있는 반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 강화와 국제공조를 택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이 핵문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풀어 나가려면 국제공조의 대열에서 한국을 이탈시켜 남북공조의 장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작금 우리가 보여주고 있는 입장과 행동은 북한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것이다. 때문에 북한은 민족공조 전략이 통하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회담 중단은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계산된 행동'일 공산이 크다. 물론 북한지도부는 남북관계 교착상태에서 이라크전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만반의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지난 날 북한이 일방적으로 회담을 연기한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이같은 행태는 북한이 즐겨 사용해 온 협상전략의 하나였다. 북한의 협상가들에게 '시간은 무한히 사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간주된다. 실제로 지연전술을 통해 실속을 챙긴 적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라크전이 조기에 종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북한에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다. 이라크 다음은 북한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점을 고려할 때 김정일의 북한은 지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셈이다. 최근 울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이 NBC방송을 통해 밝힌 바와 같이, 이제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강행함으로써 경제난을 더욱 악화시키고 주민들을 도탄에 빠뜨릴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를 포기하고 국제의무를 준수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될 것인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체제안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무엇이 진정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핵개발 노력은 한반도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김정일 정권의 존속을 위태롭게 할 뿐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이 미묘한 한반도 상황에서 남북대화를 중단하는 것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한 행위는 북한이 비정상의 불량국가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때일수록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와 현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가능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북한에는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과 강경노선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남한을 통해 국제사회로 진출하고, 핵포기를 통해 체제생존을 확보하는 길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세계일보 2003. 4. 9 시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