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선안의 허실 - 김원식
	2003-04-07
국민연금 개선안의 허실 정부는 지난 1일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 연금 급여의 인하나 연금 갹출의 인상을 전제로한 3개의 개선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했다는 점에서 환영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해 관련 당사자나 단체들이 어떤 안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선택을 유보하고 있다. 이는 근본적인 국민연금의 문제를 도외시한 채 제시된 정부의 개선 방향 자체에 대한 거부로 본다. 1안은 현재와 같이 급여를 평균생애소득의 60%로 유지하면서 보험료율을 2030년까지 현재의 2배인 19.85%까지 인상한다는 것이다. 2안은 급여 수준을 50%로 인하하고, 보험료를 15.85%로, 3안은 급여 수준을 40%, 보험료율을 11.85%까지 인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들 중 국민이 원하는 대로 해 줄테니 선택하라는 것이다. 1안을 선택하여 현재의 급여 수준을 유지하면 보험료를 현재의 두 배로 내야 한다. 경기 전망도 불투명한데다 살인적인 교육비·의료비·주택마련에 몫돈이 들어가고 있는데 앞으로 30,40년 후를 위해 보험료를 두 배로 부담하겠다고 할 가입자는 없다. 오는 7월부터는 4인 미만 직장의 근로자와 모든 비정규 근로자가 국민연금의 직장 가입자로 편입된다. 이 경우 고용주가 납부 의무자가 되는 직장 가입자 수가 늘어나서 보험료율 인상과 함께 고용주의 부담이 대폭 늘어난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기업의 생존 원리는 생산성이 아닌 이자율의 하락에 따른 비용 절감에 의존해 왔는데, 이제 오히려 비용을 더 얹어주는 기업죽이기 형국이 된다. 그리고 보험료 인상은 보험료 납입 기피 현상을 불러서 제도 관리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3안은 1안의 문제점을 최소화시킨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급여 수준을 3분의 1이나 낮춰야 한다는 점에서 개인이 쉽게 선택할 수도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선거 과정에서 급여 수준의 인하는 있을 수 없다고 공약했다. 따라서 3안은 공약을 위반하는 최악의 선택이 된다. 정부는 공약에 따라 급여를 보장해야 하는 부담과 보험료의 대폭 인상에 따른 노사의 저항을 절충하는 극히 상식적인 대안인 2안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어떤 경우든 득실을 따져보면 모두 결과가 같아서 어떤 것도 쉽게 선택할 수 없다. 연금기금이 고갈되면 정부는 연금의 기득권을 인정하여 세금으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세수의 증대는 조세 저항이 있어서 불가능하고, 따라서 공공투자·교육·의료 등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것이 연금 재정의 적자를 우려하는 이유다. 이제 국민연금 재정 안정화의 대안은 연금이 경제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고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공사연금 시스템을 전제로 하는 것이 돼야 한다. 최근 연금과 관련된 패러다임이 고령화사회(Aging Society)에서 수명연장시대(Long-life Society)로 바뀌고 있다. 연금이 고령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노후 보장 수단이지만 대책없이 평균 수명이 100세 이상이 되는 생명연장시대에서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합리적인 수준의 연금 저축을 해도 예상보다 오래 살아버리면 연금재정은 고갈되게 된다. 따라서 노후 보장 정책은 연금과 함께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한 노령층의 고용 확대에 집중돼야 한다. 고령층이 근로를 하는 동안은 연금의 수요는 줄어든다. 이제 국민연금의 고갈을 지연시키기 위해 고령자 고용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첫째, 더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적 명예퇴직과 조기퇴직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공무원과 교원의 명퇴로 인하여 40대부터 연금을 지급하게 되는 결과로 해당 연금 제도의 재정이 더 급속히 악화된 기억이 있다. 둘째, 정년퇴직도 폐지돼야 한다. 그리고 점진적 정년퇴직을 유도함으로써 원하는 만큼 노인들이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연차적으로 연금 수급 연령도 현재 계획된 65세에서 70세까지 상향 조정해야 한다. 현재의 연금 수급 연령은 평균 수명이 60세였던 19세기 초에 결정된 것이다. 파트타임이나 기업연금 등으로 퇴직 기간부터 연금 수급 연령까지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수명연장시대의 대안이다. 이제는 관점을 바꾸어서 도저히 불가능하겠지만 모든 국민이 스스로 민간 부문의 연금 제도를 활용, 굳이 국민연금이 필요없을 정도가 되도록 하는 것이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궁극적 목표가 돼야 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문화일보 2003. 4. 5 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