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에 의한 경영의 결과 - 정구현
2003-04-07
종업원에 의한 경영의 결과 재작년 9ㆍ11 테러 이후 어려워진 항공사 경영이 이라크전으로 인해 더욱 심각해져서 아메리칸항공 등 몇 개 회사가 파산 직전의 상태에 놓여 있다. 한때 세계 최대 항공사였던 유나이티드항공은 작년 12월 파산해 현재 미국의 파산보호법에 의해서 법정관리기업이 되어 있다. 파산하기 전에 이 회사 모기업인 UAL은 직원들이 전체 회사 지분의 51%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사회에 3명의 이사를 파견하고 있었다. 이 회사 주가는 2001년 1월에 30달러였는데 최근에는 그 가치가 1달 러 이하로 떨어져 상장이 폐기되고 말았다. 회사 회생을 위해서 채권단은 종업원 지분을 20%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했고, 우리사주조합(ESOP)은 주식 폐장 얼마 전에 보유주식을 헐 값에 처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종업원에 의한 지배와 경영`으로 유명했던 이 회사 파산의 주 원인은 과도한 인건비 때문이다. 작년 기준으로 이 회사는 미국 항공사 중에서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48 .5%)이 가장 높은 회사였다. 또한 1998년부터 2001년의 기간중 미국 항공사 중에서 매출원가가 가장 많이 증가한 회사이기도 하다. 종업원이 대주주인 UAL 파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항공산업은 1980년대부터 정부 규제가 완화되면서 치열한 경쟁 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업이 독특한 핵심역량을 가져야 할 뿐만 아니라 고용에 있어서도 필요시 감원 등 신축적인 정책을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UAL은 사원이 대주주인 데다가, 승무원과 정비사조합 등 노조 가 막강했기 때문에 쉽게 감원할 수가 없었고, 결국은 엄청난 적자를 낸 후에 파산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 사례에서 회사가 제대로 되려면 상품시장, 자본시장 및 노 동시장이 모두 작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만약 상품시장 에서는 경쟁이 치열한데 고용과 해고에는 자유가 없다면 결국 그 회 사는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칫하면 한국의 많은 기업이 이러 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국제시장에서 무한 경쟁을 해야 하는 기업 들이 국내의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가동하게 된다면 바로 UAL과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이 경직되어 있다고 해도 상품시장이 독과점 상태라면 그러 한 기업은 오래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부 방송사나 민영화된 공기업, 또는 일부 은행이 그러한 상황이라고 하겠다. 상품 시장이 독과점 상태이기 때문에 강력한 노조가 만들어 내는 높은 인 건비를 상품가격에 그대로 전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제에 그러한 기업이 많다면 그 나라가 경쟁력을 가질 수 없을 것임은 당연하다. 신 정부 노동정책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신 정부는 노사분규 관련법 위반자 불구속, 노동사건에 대한 손해 배상 남 용방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과정에 노동자 참여 등 노조 편향적인 정 책을 12대 국정과제 속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얼마 전에 타결된 두산 중공업 노사 분쟁의 해결에 있어서도 노조에 유리한 중재안을 관철시켰다. 이러한 정책은 인건비의 과도한 상승을 가져오고, 기업의 가격 경쟁 력을 약화시켜서 장기적으로는 경제침체라는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경제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에 영미식 기업지배구조를 도입하 였는데, 이는 바로 자본시장 기능을 강화해 기업을 규율하겠다는 것 이다. 그러나 자본시장과 상품시장만 가동되고, 노동시장이 경직돼 있으면 기업은 해외로 나가거나 아니면 침체의 길로 갈 수밖에 없음 을 유념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대기업 규제는 1980년대 초에 시장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을 때 정치권력이 경제권력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 간 국내시장이 개방되 고 진입규제가 완화되어 상품시장의 경쟁이 심화되었으며, 경제 위기 이후에는 자본 시장도 어느 정도 기능을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의 기업규제 철학과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즉 상품, 자본, 노동 세 시장에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고, 자본과 노동 사이에서 중간적인 입장에서 이해를 조정해야 한다. 개발연대와 같이 정치, 관료와 재벌이 권력을 분점하던 시대가 아니 고, 이제는 노조와 시민단체 등으로 권력이 분산되어 있는 만큼 정부 의 시장개입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기조가 바뀌어야 한다. 정구현 (연세대 경영학 교수 / 시민회의 회원) 출처 - 매일경제 2003. 4. 7 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