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역할은 국민통합 - 김석준
	2003-03-17
정부 역할은 국민통합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좌우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대선 과정의 촛불시위로 촉발된 이념갈등이 두 개의 삼일절 기념 대중집회로 나타나면서 해방정국의 이념 혼란을 떠올리게 했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주의 체제들이 붕괴한 후 이념 대결이 그치고 세계적으로 냉전체제는 와해되었다. ‘이데올로기의 종언’과 ‘역사의 종언’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화와 더불어 전세계를 휩쓰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좌우 분열이 심각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탈(脫)냉전과 탈이데올로기 및 포스트 모더니즘을 주장하던 일부 지식인들이 이념 충돌을 ‘정치적 내전과 역사발전 과정’으로 곡해하는 것은 심히 우려할 일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북한 핵과 주한미군 문제를 둘러싼 민족공조와 한미공조를 동시에 원한다. 북한 핵 개발 저지와 대등한 한미관계를 통해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실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미국의 대북(對北) 군사력 사용도 반대한다. 그럼에도 삼일절에 한쪽은 ‘주한미군 철수 반대, 북한 핵 개발 저지, 반미 자제’를 주장하고, 다른 쪽은 ‘대등한 한미관계, 미국의 대북 군사력 사용 반대, 북한과의 민족적 연대’를 외치면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가졌다. 한쪽은 한미공조를, 다른 쪽은 민족공조를 더 강조하고 있다. 좌우 대결의 시각으로 보면 전자는 우익에서, 후자는 좌익에서 한반도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민주화시대에는 다양한 주장이 시민사회의 활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심각한 사회균열과 갈등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가 통합할 수 있는 범위 내일 경우이다. 이 때문에 산업화 시대를 거쳐 민주화 시대로 접어든 지금 민주화 3기(期) 정부인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중요하다. 좌우 대결을 증폭시킬 수도 있고 좌우를 통합하는 국민통합 정부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대선 과정에서는 분명 좌우 대결을 강조하고 전자의 입장에서 공약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취임식에서부터 통합의 입장으로 바뀌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핵 문제의 경우, ‘선 대화 후 핵 동결’ 입장에서 ‘선 북한 핵 동결, 후 북미대화’로 선회하고, 주한미군도 철수반대로 바뀜이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이상 시민사회의 이념 대결에 수수방관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노무현 정부의 출범에 한쪽 세력의 지지가 큰 힘이 되었던 만큼 이제는 그들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정부 담당자로서 정부와 시민사회의 바른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시민사회의 좌우 내부균열이 결코 ‘정치적 내전’으로 발전하도록 방치하거나 이용하고자 해서는 곤란하다. 밖으로 외세의존의 탈피가 세계화시대의 고립으로 귀결하지 않고 민족화합이 독재정권의 연장을 통한 북한 주민의 생존위협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안으로 권력 출범의 기반이 되었던 한쪽 세력과 밀착할 경우에는 심각한 ‘정치적 내전(內戰)’이 전개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으로 이미 시민사회 내부에는 거대한 권력이동이 진행 중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교총과 전교조, 한국예총과 민예총, 변협(辯協)과 민변(民辯), 경영자 집단과 노동자 집단, 언론, 학계 등 각계에서 권력관계가 재편되고 있다.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국가권력 내부나 시장 내부에서도 거대한 질서 재편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과 사이버 정치가 현실 권력관계 재편에 요긴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이 앨빈 토플러가 예상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향한 정보사회의 일반적 권력재편이 아니라 ‘정치적 내전’의 일환이라면 이것은 예상치 못한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세계화 시대이다. 특히 9ㆍ11 테러 이후 세계는 더욱 첨예하게 변화하고 있다.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얼마나 잘 조화하느냐가 중요하다.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조화도 더욱 중요하다. 그 조화의 능력이 정부의 능력이고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이다. 정부의 기본 역할은 제(諸)사회세력의 통합이다. 사회의 균열을 정략적인 차원에서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내전’을 부추길 때가 아니다. 대결과 갈등으로 ‘승리’와 ‘패배’에 의한 변증법적 역사전개가 아니라 진정으로 세계질서에 부응하여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노무현 정부의 국정운영 능력이 필요한 때이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 / 시민회의 공동대표) 출처 - 주간조설 2003. 3. 14